<다녀온지 한달만에 남기는 신혼여행 후기 3-팔레르모&체팔루>

팔라티나 예배당을 나와 호텔에서 짐을 찾았다. 택시를 타고 팔레르모 항구로 갔다. 항구 근처로 가니 덩치 큰 차들이 부쩍 눈에 띄었다. 이탈리아 본토에서 혹은 바다 건너 다른 나라에서 짐을 싣고 오가는 화물 트럭들이었다. 택시에서 내려 4차선 정도 되는 신호등 없는 도로를 건너 AVIS 사무실로 들어가는 것부터가 보통 험난한게 아니었다. 이 자그마한 길에서 시칠리아인의 운전 습성을 제대로 체험했다. 크락션과 하이빔과 무깜빡이 끼어들기 등등… 그나마 다행인건 일단 사람이 들이대면 차가 서긴 선다. 뭐라고 욕을 하는 것 같긴 했지만, 못 알아들으니 노상관.

AVIS 사무실에서 서류를 작성하고 차를 픽업하러 주차장으로 가기 위해선 아까 그 길을 다시 건너야했다. 그래도 두번째 건너는 길이라고 좀 더 대범하게 발걸음을 내딛었으나, 그래도 쫄긴 쫄았다. 풀풀 날리는 먼지와 엔진 소리와 클락션 소리가 뒤섞인 항구의 도로는 어지러웠다. 사무실 직원이 차량 픽업 장소를 알려줬는데, 한번에 못 찾아가고 빙빙 돌면서 헤맸다. 사무실에 다시 찾아가서 물어봤는데도, 못찾아서 항구에서 일하는 아재들한테 길을 물었다. 어차피 단어가 많이 들어갈 수록 못 알아들을 가능성은 높아지니깐, “where is AVIS” “Dove AVIS” 딱 이렇게만 외쳤다. 아 그전에 “Parli inglese?”를 물어보긴했다.

문제는 영어를 못하는 아재들도 흔쾌히 “Si!!”를 외치셨다는 것. 아재는 엄청 빠른 이탈리아어로 말하고, 나는 영어로 더듬거리고… 의사소통이 될리가 없다. 손짓발짓으로 왼쪽 오른쪽 느낌적인 느낌을 이해하는 중에 아재가 잠깐 기다려보라고 하더니, 지나가는 다른 아저씨를 불렀다. 이 아저씨는 ‘잉글레제’가 좀 된다는 것 같았다. 잉글레제가 좀 되는 그 아저씨는 그래도 손짓발짓 시니스트라 데스트라 대신 레프트 라이트라고 말이 통하는 분이라 그 덕인지 한참만에 AVIS 간판을 발견하고 차를 찾았다.시칠리아의 좁은 길에 딱이라는 도요타 야리스를 몰고 팔레르모 시내를 빠져나갔다. 아까 건너면서 기겁했던 그 4차선 도로를 빠져나가는게 좀 헬이었던걸 빼곤, 모든게 무난했다. 이번 여행을 계기로 구글을 찬양하게 됐는데, 그 계기가 바로 길치 둘을 구원해준 구글네비님이시다. 유럽 렌트카 여행 다녀온 사람마다 구글네비 타령을 하길래 대체 어느 정도인가 싶었는데, 네비를 켜자마자 아이나비 따위보다 훨씬 정확한 도로정보를 ‘한국말’로 알려줬다. 아무튼 구글네비를 따라 거의 안 헤매고(구글네비 달고도 헤맨 적은 있는데 대부분 구글네비가 20미터 앞에서 우회전하라는데 멍때리다가 지나친 것). 아, 그리고 인상적인 것은 이탈리아 차에는 선팅이 된 차가 거의 없었다. 그러다보니 강렬한 직사광선이 내리쬘 땐 얼굴과 상반신이 함께 이글이글탄다. 좋은 점(?)도 있는데 룸미러로 뒷차 운전자 표정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뒤에서 따라오면서 눈치를 주면 알아듣기 쉽다는 말이다. 어쩌다 옆차랑 시비가 붙으면 문을 내리고 어차피 운전자가 알아듣지도 못할 말로 욕을 하는 대신, 안면근육을 놀려 빡침을 표현할 수 있다.

▲시칠리아 도로를 달리다가

팔레르모 도심을 벗어나자 평화로운 시골 벌판 사이로 쭉 뻗은 도로가 나타났다. 체팔루로 가기 위해선 시칠리아 북서쪽 해안도로를 거쳐야했다. 오른쪽으로 새파란 코발트 블루의 바다가 보이는 길을 한시간 정도 달려 Cefalù라는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바위산에 만든 성벽 아래로 빨간 지붕 건물과 우뚝 솟은 교회의 종탑이 보이는 예쁜 마을이 나타났다. 이정표를 읽지 않아도 그곳이 체팔루라고 알아볼 수 있었다.

체팔루는 산이라고 하기엔 낮고 언덕이라고 하기엔 높은 작은 산등성이에 자리한 마을이다. 바다와 바로 맞닿아 있는데 해안선은 산쪽으로 움푹 들어간 U자 모양이다. 그 해안선에서 시작된 좁은 골목길이 거미줄처럼 펼쳐져 산 위에 남아있는 로까(rocca 요새) 입구까지 닿는다. 급경사가 시작되는 어귀에 기차역이 있었다. 구도심 한가운데는 이탈리아 운전할 때 최고 짜증나는 ZTL 적용구역이었으므로, 아예 접근할 생각을 접고 기차역 주차장에 차를 댔다.

▲해안가와 로까를 잇는 길. 체팔루. Cefalù

해안가로 내려갔다. 마을이 감싸 안은 해안선에는 새하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고,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파랬고, 바다는 그보다 더 새파랬다. 아주 눈에 익은 풍경이었다.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바닷가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바로 그 장면을 머릿속에 재생할 수 있었다. 영화를 찍었던 1980년대나 지금이나 체팔루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들쑥날쑥한 네모 건물들이 영화에서보다 아주 조금 더 낡아보일 뿐이었다. 비수기라 조용한 해변엔 간식을 들고 소풍을 나온 동네사람들만 삼삼오오 앉아 바닷바람을 즐기고 있었다.

▲해변. 여기 어디에선가 '시네마 천국'을 촬영했다. 어차피 물에 안들어가는 사람에겐 비수기 바닷가가 훨씬 좋다. 체팔루. Cefalù

해안가에서 시작된 골목으로 들어가자, 노랗고 네모난 건물들 사이사이를 누빌 수 있었다. 트립어드바이저에서 레스토랑을 찾아봤는데 5위권 안쪽에 들어가 있는 집들은 비수기라 그런가 문을 닫았거나, 동선을 고려했을 때 찾아가기에 영 적절하지 않은 곳이었다. ‘1등 아니면 싫다’던 박 기자도 배가 고팠는지 조용해졌다. 할 수 없이(…) 무려 트립어드바이저 6등에 오른 ‘Locanda del Marinaio’에 가기로 했다. 와인저장고처럼 둥근 천장의 레스토랑이었다. 배가 너무 고프던 차라 메뉴판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해산물파스타와 대구살라비올리를 주문했다.


▲Locanda del Marinaio의 파스타들. 둘다 맛있었지만, 특히나 해산물 파스타는 지극히 평범해보이는 재료로 대단한 맛을 냈다.

이 집은 식전빵부터가 인상적이었다. 겉은 거칠고 속은 보들보들한 빵이었는데 향이 진한 올리브유에 찍어먹는게 어찌나 맛있던지… 원래 이탈리안 레스토랑 가면 식전빵 잘 안먹는데 순식간에 빵 한접시가 뚝딱 없어졌다. 조금 기다리다보니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해산물 파스타는 인생파스타였다. 이렇게 평범한 메뉴가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니. 지금 생각해봐도 놀랍다. 딱히 뭐가 많이 들어가지도 않은 오일베이스 파스타였는데, 신선한 재료를 도대체 어떻게 익힌건지 연하고 탱글탱글한 식감이 최고였다. 면에도 해산물의 맛이 깊게 배어 밀가루 면만 씹어도 심심하지 않았고, 생면을 딱 적당한 정도로 쫄깃하게 익었다. 한접시가 사라지는게 아까울 정도로 최고의 파스타였다. 다음에 시칠리아에 간다면 이 파스타를 다시 먹기 위해 체팔루를 갈 용의가 있다.

박기자가 시킨 대구살 라비올리도 한국에서 못본 음식인데, 해산물 파스타만큼의 임팩트는 아니지만, 신선한 재료를 솜씨좋게 요리한 디쉬였다. 꽉 채운 대구살이 예상과 달리 생각보다 탱글거려서 조금 놀랐고, 라비올리피도 딱 적당히 익어서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대단히 만족스러운 점심을 먹고 체팔루 거리를 걸었다. 두오모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곳곳에 서있는 팻말을 읽지 않아도, 가장 우뚝 솟은 종탑을 찾으면 되니깐. 하긴 이탈리아의 많은 도시들에서 ‘모든 길은 두오모로 통한다’.

체팔루 두오모는 이제 조금 봤다고 익숙해진 아랍노르만 양식의 건축물이었다. 규모는 몬레알레대성당보다 훨씬 작은 것 같지만(몬레알레를 안갔으니) 내부 모자이크가 팔라티나 예배당이나 몬레알레 대성당과 비슷한 스타일로 매우 아름답다고 했다. 음… 근데 성당이 닫혀있었다. 열릴 때까지 기다리라는데 아그리젠토로 가야하는 시간이 점점 늦어지고 있어서 마음이 급했다. 할 수 없이 두오모 광장의 조그마한 젤라또집에서 젤라또를 사들고 먹으면서 두오모 외관이나 감상하기로 했다.

▲조그맣지만 포스는 작지 않았던 체팔루의 두오모. Duomo di Cefalù

겨울 유럽여행의 안좋은 점이, 길에서 돌아다니며 아이스크림 먹기 어렵다는 점이다. 4년 전 파리에서 베르티용 아이스크림 테이크아웃해서 먹으려다가 이가 시려 죽을 뻔했었다. 2월에 벚꽃이 만개하는 시칠리아에서는 그럴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피스타치오, 초콜릿 같은 평범한 맛 아이스크림을 사서 가게 앞 벤치에 앉았다. 고터 파미에스테이션에 있는 ‘젤라X젤X띠’라는 젤라또집을 굉장히 좋아하는데도 하나에 4000원이 넘는 가격이 너무 비싸서 자주 못가고 있다. 진한 피스타치오맛, 초콜릿맛 아이스크림이 두가지맛에 2유로도 안했던 걸로 기억한다. 양은 훨씬 더 많다. 본토의 위엄이라고 넘기기엔 한국에서 젤라또 사먹으면 손해보는 느낌을 넘어 눈탱이 맞는 느낌인걸 지울 수 없다.

막상 팔라티나 예배당에서는 내부 모자이크의 임팩트가 너무 강해서 외관을 볼 정신은 없었던 것 같다. 벤치에 앉아 젤라또를 핥아먹으며 적갈색 벽돌로 지어진 두오모를 눈에 담았다. 이탈리아를 여러번 왔지만 각 도시를 대표하는 두오모는 제마다 다른 모습이었다. 그 중에서도 외관이 색다른 시칠리아의 두오모들은 강한 인상을 남겼다. 양파모양 창문, 늘어선 기둥과 아치, 미나레트를 닮은 종탑. 이렇게 생긴 건물들이 서서히 눈에 익어갈 때쯤 아그리젠토로 떠났다. 체팔루에서 아그리젠토까지는 차로 두시간 반 남짓 걸리는 거리. 그러나 마치 다른 나라에 간듯 또 완전히 다른 첫인상으로 성큼 다가왔다.


▲아마도 바오밥 나무일 것이라 생각하고 사진을 찍었다. 가로수로 바오밥나무라니! 아그리젠토 가는 길

▲'신들의 도시' 아그리젠토로 가는 길. 펼쳐지던 벌판에서 갑자기 신전이 튀어나와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한다.


<계속>



Posted by Alix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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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온지 한달만에 남기는 신혼여행 후기 2- 서울&팔레르모>

결혼식날은 눈 깜짝할 사이에 휙 지나가버렸다. 사진을 아주 많이 찍었던 것 같고, 하도 웃는 표정을 고정시킨채 사진을 찍느라 나중엔 안면근육이 제멋대로 움직였던 것 같은 기억이 희미하게 남았을뿐이다. 오히려 선명하게 기억나기 시작하는 것은 결혼식이 끝나고 프레스센터 로비에 내려온 직후부터다. 태극기 집회 참석자들이 이미 프레스센터 앞을 가득 채우다 넘쳐 프레스센터 로비까지 점거하고 있었다. 채 한복을 갈아입지도 못하고 직원들이 뚫어준 길을 사수하기 위해 차에 올랐다. 차창 밖 풍경은 기괴했고 약간은 무서웠다. 다시 한번, 이 혼란을 뚫고 결혼식에 와 주신 분들께 너무나도 감사드린다. 신행 가는 비행기가 다음날 오후라 여유있게 머리도 손질하고 친정집에 놔둔 캐리어까지 들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플라자호텔로 왔다. 호텔에 짐을 풀고나니 허기가 몰려왔다. 생각해보니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그날뿐 아니라 드레스에 육신을 맞추기 위해 두달동안 저녁을 먹지 않은 고행을 겪은지라 허기에 시달리기가 일상이었던 나날이었다. 봉인이 풀렸다는 생각에 두달치 허기가 한꺼번에 몰리는 기분이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어이없지만 맵고 짠게 몹시 그리웠다. 피부가 뒤집어진다고 한동안 못 먹었으니깐. 남편한테 졸랐더니 의외로 쉽게 넘어갔다. 둘이 손잡고 르메이에르 빌딩으로 낙지철판을 먹으러 갔다. 불과 몇시간 전 태극기를 들고 나온 사람들로 가득했던 자리를 촛불을 든 사람들이 채우고 있었다. 집에 먼저 간 친구들이 ‘조경수역’이라고 알려준 광화문 사거리 인근 지역엔 아직 집에 가지 않은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과 촛불을 든 사람들이 섞여 묘한 긴장이 감돌았다. 그렇게 희한한 광경을 배경으로 회사 다닐때 데스크들이랑 자주 갔던 식당에서 낙지를 먹었다. 중부라인에서 한겨울에 손이 얼어터지는 와중에 집회 취재하다가 처음 알게된 사내커플의 결혼 첫 만찬으로 아주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음날 낮비행기였기 때문에 저런 여유도 부릴 수 있었다. 아무튼 다음날 오후 2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11시쯤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보딩패스를 받아들고 면세점 쇼핑을 좀 하다보니 시간이 후딱 흘러 보딩이 시작됐다. 타고갈 비행기는 인천에서 로마로 가는 알리탈리아항공 AZ759편. 이 비행기를 타고 12시간 반 정도(E티켓에는 12시간 55분이라고 나왔는데 실제 걸린 시간은 12시간반 남짓) 가면 로마 피우미치노 시간에 현지시각 오후 7시에 도착한다.

알리탈리아 항공은 처음 타봤다. 프리미엄이코노미석 티켓을 1인당 110만원쯤에 발권했다. 신행 가기 한달 전에 루프트한자 프리미엄이코노미-비즈니스석을 타고 다녀온 스페인 여행이 아주 만족스러워서, 기대했는데 결과적으론 가격대비 만족스러웠다. 루프트한자보다는 작은 듯하지만 그래도 우등고속 수준으로 레그룸이 넓은 편이었고, 발받침이 올라가서 다리가 덜 피곤하다. 기내식이야 원래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다만 한가지 아쉬운 것은 원래 지급된다고 알고 있었던 어메니티키트는 더이상 주지 않는 것 같다. 기내 엔터테인먼트는 한국어가 지원되지 않기 때문에 이 항공사를 이용한다면 자체 엔터테인먼트를 꼭 준비하시길.

▲여행 중 제일 신나는 순간. 타고 갈 출국비행기랑 인사하는 순간.

▲알리탈리아 프리미엄이코노미석 레그룸은 숏다리를 쭉 뻗어도 안 닿을만큼 널럴하다.

신부 입장곡으로 ost ‘A Whole New World’를 선택했을만큼 어린 시절 베스트 애니메이션이던 ‘알라딘’과, 시칠리아를 배경으로 찍은 영화 ‘말레나’를 기내에서 조금 봤다. 말레나를 조금 보다 만 것은 알라딘을 먼저 봤기 때문에 노트북 전원이 꺼졌으니깐. 영화 속 시라쿠사 두오모 광장은 하얗게 빛나고 아름다웠다. 먹다 자다 깨다 몸부림치는 사육의 시간을 12시간 넘게 버티다보니 모니터에 나타나는 위치는 이오니아해를 지나고 있었다. 드디어 이탈리아 근처에 왔구나.

▲이탈리아 국적기에서 파스타를 먹었는데, 놀라우리만치 맛이 없다. 기내식은 허기를 면하라고 주는 음식이니깐.

▲비행기는 계속 서쪽을 향해 날았고, 해는 서쪽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이오니아해를 지나며.

로마공항에 내렸다. 오후 7시 15분. 출발할 때 30분 가까이 늦게 뜬걸 감안하면 선방한 시간이다. 환승시간이 채 두시간이 되지 못한지라, 과연 짐이 사람 따라 무사히 팔레르모 가는 비행기에 탈지 조금 걱정이 되긴했다. 공항 터미널을 돌아다니기엔 몰골이 너무 쩔어있기도 하고 피곤해서 미리 탑승구 앞에 가서 앉아있었다. 오후 9시에 출발하는 팔레르모행 비행기는 밤 10시 30분쯤 도착할 예정이었다. 보딩 시작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면서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 줄을 서기 시작했다. 밤비행기인데도 만석인 비행기에 타려는 사람들의 얼굴엔 피곤이 묻어있었다. 줄에는 우리 말고도 한국인 한팀, 일본인 한팀이 보였다. 닭장같이 좁은 비행기에 사람이 다 타자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 뜨겠구나’ 생각하고 잠시 눈을 감았다 일어났는데도 비행기는 여전히 활주로에 붙어있었다. 시간은 이미 30분 넘게 흘렀는데. 이륙 허가를 받은 비행기들이 줄줄이 밀려있어서 이륙이 늦어진다는 방송이 나왔다. 숙소에 도착할 시간이 대체 몇시쯤일지 조바심이 들었는데 그 와중에도 눈이 감겼다. 아마 깨워서 일어났던 것 같은데, 눈을 떠보니 팔레르모 공항에 내려 있었다. 시계를 보니 10시 20분. 1시간 10분이 걸린다면서 40분만에 왔다. 슈퍼카의 나라답게 비행기가 슈퍼카급으로 질주한듯.

▲팔레르모 공항. 나름 시칠리아 주도의 관문인데, 카타니아가 더 경제 중심지라 그런가 공항이 그닥 크진 않았다.

공항의 첫인상은 낡고 남루했다. 짐을 찾는 카루젤에 갔는데, 우리 짐이 나오지 않았다. 걱정하던 일이 벌어진 것인가.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만약 짐이 분실됐을 때의 시나리오가 머릿속에서 돌기 시작했다. 아까 줄 설때 본 동양인 승객 몇명도 우리처럼 걱정스러운 얼굴로 컨베이어벨트를 응시하고 있었다. 짜증과 걱정이 뒤섞여 두리번거리던 눈에 ‘Baggage from non EU countries’ 사인이 보였다. 혹시나 하고 물어물어 non EU 국가에서 온 짐이 따로 도는 카루젤에 가보니, 눈에 익은 짐들이 마구 굴러다니고 있었다. 유럽을 여러번 다녔지만, 이렇게 아예 컨베이어가 따로 돌아서 사람 당황스럽게 만드는 공항은 처음이었음…

팔레르모 공항에서 팔레르모 시내까진 30분이 넘게 걸린다(고 구글맵님이 말해주셨다). 도저히 이 야밤에 초행길을 공항버스 타고 내려 찾아갈 자신이 없으므로, 그리고 우린 신혼여행 중이므로 택시를 탔다. 택시기사 아저씨는 영어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시내로 가는 도로 양옆으로 펼쳐지는 야경에 이런저런 설명을 매우매우 자세하고 친절하게 해주었다. 내 짧은 이탈리아어와 아저씨의 짧은 영어의 콜라보로 청해율은 60% 정도될 것 같은데, 저기 보이는건 팔레르모 시내, 저쪽 보이는덴 항구, 팔레르모에서 남쪽으로 얼마나 가면 몬레알레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호텔 문앞까지 택시가 진입할 수 없어서, 기사 아저씨가 ‘콰트로 칸티’까지 가서 내려주겠다고 했다. 야밤에 낯선 길에 내리는걸 걱정하는 표정을 눈치챘는지 아저씨는 택시에서 내려 짐을 꺼내주면서 “저기 보이는 ‘따박’ 간판에서 10걸음 걸어가면 호텔 문 앞이다”라고 알려줬다. 택시에서 호텔 문앞까지 거리는 대략 20미터 정도. 친절한 아저씨 덕에 팔레르모의 첫인상이 좋아졌다.

콰트로칸티에 있던 호텔 이름은 ‘Eurostars Centrale Palace Hotel’. 오래된 옛날 저택을 개조한 호텔이라 로비부터 매우 고풍스러웠다. 건물이 ㅁ자 형으로 생겨서 가운데는 중정이 있고, 차를 마시며 쉴 수 있는 테이블들이 있었다. 1층 곳곳엔 화려하게 살롱스타일로 꾸며놓은 휴게 공간에서 차나 초콜릿을 먹을 수도 있었다. 리셉션 직원의 친절도는 쏘쏘한 편. 너무나 감동적인 서비스는 아닐지라도, 불편하지 않게 챙겨주는 정도라 나쁘지 않았다. 1박 잠만 자다갈 호텔이라 시내 가까운 곳에 수페리어 더블룸으로 예약했는데, 방은 생각보다 넓었다. 침구도 깨끗한 편이었다. 객실 곳곳이 낡아서 수리가 필요한 곳이 보이긴 했지만. 도심 곳곳이 낡아가고 있는 팔레르모의 모습에 어울렸달까. 심각한 문제는 딱 한게 있었는데, 샤워기 헤드 부분이 지저분해서 좀 찜찜했다.

그냥 호텔에서 짐풀고 잘까 하다가, 그래도 하루 묵는 팔레르모의 야경이 아까워서 밖으로 나섰다. 쇠락한 도시 같은 분위기, 시칠리아 간다고 했을 때 사람들의 걱정어린 시선이 조금 걱정되어 카메라를 들고 가는 것도 불안했는데 웬걸. 그날 무슨 축제라도 있었는지 길에 사람도 많았고, 거리 곳곳에 색종이 조각이 떨어져 있었다. 아까 택시에서 내린 콰트로칸티는 정신차리고 보니 더 아름다웠다. ’네개의 모서리’라는 뜻의 ‘콰트로 칸티’는 팔레르모의 가장 큰 도로인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거리와 마께다 거리가 만나는 사거리였다. 사거리의 모서리의 건물은 분수대와 조각으로 장식돼있다. 장식은 삼단으로 이뤄져 있는데, 가장 아래쪽 분수는 사계절을 뜻하는 여신상, 2층 발코니는 스페인왕들의 입상, 가장 위쪽은 팔레르모의 수호성녀상이 서있다. 오렌지빛 조명이 아름답지만 낡은 조각을 비췄다.

▲사거리 하나만 잘 꾸며놔도 이토록 인상적이다. 콰트로 칸티의 야경. Quattro Canti..

마께다 거리를 따라 쭉 북쪽으로 올라갔다. 갑자기 길이 좀 넓어지더니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공터가 나타났다. 왼쪽에 그리스 신전을 닮은 큰 건물이 보였다. 어디선가 많이 본 건물이다. 구글맵을 켜고 보니 예상하던 그 건물이 맞았다. 영화 ‘대부3’에서 마이클 코를레오네가 소리없이 절규하던 그곳. 마시모 극장이 위풍당당하게 눈앞에 서 있었다. 오늘 공연을 막 마쳤는지,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레드카펫을 깐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이날 공연은 시칠리아 출신 작곡가 벨리니의 ‘노르마’. 시간이 맞았으면 보고 갔을텐데 아쉬웠다. 내가 노르마를 ‘너무너무너무너무 재밌다’는 표정으로 봤으면, 남편 박모씨는 그 표정을 ‘너무너무너무너무 신기하게’ 보다가 옆에서 잤겠지.

▲마시모 극장. Teatro Massimo. 낮에 봐도 멋졌겠지만, 영화 '대부' 시리즈의 팬이라면 밤에 가는게 좋은 것 같다. 가족들과 오페라를 보고 나오던 메리 코를레오네는 레드카펫이 깔려 있는 계단에서 총에 맞아 "Dad..."란 말을 남기고 죽었다. 무쇠같은 마이클 코를레오네가 절규하는 영화 속 장면도 이날처럼 오페라가 끝난 저녁시간이었다.

아쉬웠지만 마시모극장에서 사진만 열심히 찍었다. 큰맘 먹고 들고온 DSLR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있는데, 온갖 자세로 사진을 찍고 있던 우리를 바라보던 한 무리의 젊은애들이 있었다. 그중 한명이 다가와서 “사진 찍어줄까?”하고 물었다.

다가온 남자의 영국식 영어 억양이 굉장히 유창하고, 일행이 고급진 행색이라 사실 조금 망설였다. 고물 갤럭시노트로 찍는 얼큰이 셀카 대신 제대로 인간의 행색이 나온 투샷을 남기고 싶긴 했으니깐. 그래도 ‘먼저 사진 찍어주겠다고 다가오는 외국인은 일단 거절하라’는 여행 상식을 뿌리치지 못했다. 정중하게 “노땡쓰”라 말하며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더니,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었다. “꼬레아 델 수드”.

팔레르모의 일요일 밤거리가 생각보다 떠들썩해서 무사히 야경을 보고 호텔로 돌아와서 기절했다. 전날밤 호텔 욕실이 매우 험블해서(특히 물이 나오는 샤워기 헤드부분의 찜찜함) 못마땅했으나, 이튿날 조식은 매우 훌륭해서 언짢음이 조금 풀렸다. 조식에 나온 빵과 아란치니와 블러드오렌지주스가 되게 맛있었다. 아란치니는 시칠리아를 돌아다니다 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간식이다. 토마토, 고기, 야채 등등 다양한 소를 쌀에 주먹만한 사이즈로 뭉쳐서 고로케처럼 튀긴 건데 한개만 먹어도 배불러진다. 2월은 블러드오렌지가 제철이라는데 갈라놓은 오렌지는 정말 핏빛까지는 아니어도 제법 새빨갛다. 이 동네는 가는 호텔마다 모두 오렌지주스를 직접 짜주는게 아주 당연한 일이었는데, 호텔마다 가당/무가당 여부, 오렌지 종류 등등이 제각각이라 먹어보는 재미도 있었다. 여러군데에서 블러드오렌지주스를 마셨지만, 이 호텔에서 먹은 새빨갛고 적당히 새콤달콤한 주스가 최고였다.

아침을 먹고 호텔을 나와 콰트로칸티를 이루는 비토리오엠마누엘레 거리를 따라 10분 정도를 걸었다. 넓은 공터가 보이더니, 구름 한점 없는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거대한 적갈색 대리석 건물이 보였다. 푸른색 돔 지붕과 양파 모양 창문, 높이 솟은 첨탑과 아라베스크 문양으로 장식된 벽면, 그와 쉽사리 연결되지 않는 성인과 성녀의 조각들, 이곳이 일년 내내 온화한 기후임을 알려주듯 정원을 장식한 야자수. 팔레르모 대성당의 거대한 건물에는 이 도시를 지배한 세력의 흔적들이 그대로 녹아있다. 대성당으로 지어진 건물은 아랍인들의 지배를 받으며 모스크로 쓰이다가 다시 대성당의 이름을 되찾는 파란만장한 역사를 겪었다. 이 도시를 지배하고, 이곳에서 신을 찾았던 사람들은 저마다의 흔적을 건물에 공들여 깊이 새겼다. 그 때문인지 1000년째 신을 위한 건축물로 그 용도를 지키고 있었다.

▲보는 사람을 압도하듯 위풍당당한 팔레르모 대성당. Cattedrale di Palermo

대성당을 지나 또 5분 정도 걸어가니깐, 드디어 목적지인 노르만궁전이 나타났다. 비토리오엠마누엘레 거리와 맞닿은 면은 궁전의 뒷면이라 입구로 들어가기 위해선 또 한참 건물과 성벽을 돌아가야 했다. 궁전은 아랍인들이 지었다는 꽤 높은 성벽에 둘러싸여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이 궁전에 온건 부속 건물인 ‘팔라티나 예배당’을 보기 위해서였다. 팔레르모 대성당과 인근 도시 체팔루와 몬레알레 대성당은 아랍∙노르만 양식의 걸작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 그 중 가장 백미로 꼽히는 몬레알레 대성당에 꼭 가고 싶었지만, 동선이 꼬이는 고로, 과감히 버렸다. 대신 몬레알레 대성당과 가장 닮았다는 팔라티나 예배당을 보기로 한 것. 팔레르모에서 가장 손꼽히는 관광지+현재도 사용되는 주요 관공서 건물인지라 금속탐지기로 검사를 받는다. 궁전 1층에서는 시칠리아 연해에서 발견된 해저 유물 전시회를 하고 있었는데, 어차피 봐도 모르니깐 가볍게 패스하고 바로 2층의 팔라티나 예배당으로 갔다. 미사가 진행중이어서 마음대로 구경할 상황이 아니었다. 궁전의 다른 부분들을 구경하기로 했다. 궁전 일부는 시칠리아 주의회 의사당으로 현재도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보안이 시칠리아의 다른 명소들에 비해선 보안이 삼엄한 편이었지만, 그래도 의사당 내부에 앉아볼 수도 있었고 궁전으로 쓰이던 여러 방들을 돌아다닐 수도 있었다. 기억에 남는 공간은 중정과 회랑이었다. 기둥과 기둥을 잇는 아치로 ㅁ자형 중정을 만들었다. 얼마전 스페인 여행 갔을 때 그라나다와 세비야에서 본 무데하르 양식의 건물들의 중정을 꼭 닮았다.

다시 2층으로 내려가 팔라티나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미사가 막 끝나 경건한 공기가 남은 예배당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단조로운 멜로디의 성가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조개 모양의 성수대에서 성수를 살짝 찍어 성호를 그었다. 시선이 처음 꽂힌 곳은 천장. 8명의 천사들에 둘러싸인 예수님의 모습이 황금빛 모자이크로 새겨져 있었다. 신약 내용과 사도행전을 묘사한 정교한 모자이크화를 채운 금빛 배경이 성당 내부를 은은하게 밝히고 있었다. 성당 내부는 모자이크 외에도 아치와 양파 창문, 아랍식 건물 특유의 복잡한 문양들로 장식돼 있었다. 신을 섬기는 방식은 제각기 달라도 가장 아름다운 건물을 신에게 바치는 것은 이 섬을 거쳐간 정복자들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였나보다. 눈이 빠져라 천장만 바라보다가 문득 발을 딛고 있는 바닥에 시선이 멎었다. 바닥을 채운 섬세한 모자이크가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손이 닿지 않는 먼 곳만큼이나 손을 뻗으면 닿는 곳도 숨이 멎게 아름다웠다.

▲경건한 아름다움에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 팔라티나 예배당에서. Cappella Palatina

▲황금빛 천장 모자이크만큼이나 바닥을 가득 수놓은 모자이크 또한 환상적이다. 팔라티나 예배당에서. Cappella Palatina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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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온지 한달만에 남기는 신혼여행 후기 1- prologue>

신혼여행 갔다온지 약 한달이 되어간다. 남편 박모(32)씨의 말에 의하면 이게 신행인지 극기훈련인지 패키지 여행인지 알 수 없는 난이도 상상상의 여행이었다는데 믿거나 말거나. 그간 다녀온 유럽 여행 중 가장 여유가 넘치고 웰빙 돋았으며 즐겁게 먹고 마신 여행이었다.

사진을 미리 좀 올리긴 했지만 여행은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중부지역으로 갔었다. 9박 11에 이르는 여행 기간 동안 5박은 시칠리아에서, 4박은 이탈리아 중부지역에서 머물렀다. 이번에 다녀온 시칠리아와 토스카나주와 움브리아주를 아우르는 이탈리아 중부는 같은 나라지만, 두 나라에서 머문 듯한 느낌이 들었다.

토스카나 주는 ‘이탈리아’의 이미지를 압축한 고장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단테 알리기에리 같은 르네상스 시대 거장은 토스카나에서 태어났다. 현대 이탈리아어는 토스카나 사투리에서 왔다. 구찌와 페라가모 등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브랜드도 토스카나주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냉정과 열정사이’,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영화도 이곳의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찍었다. 이탈리아 중부에 머무르는 기간엔 그래서 전형적으로 이탈리아 여행을 하면서 즐길 것들을 즐겼다. 맛있는 음식, 아름다운 자연, 가까이 갈 수록 위엄이 느껴지는 피렌체의 두오모, 오래된 골목 곳곳에 숨어있는 예쁜 가게들 등등.

같은 이탈리아 국경 안이지만 시칠리아의 공기는 토스카나와 전혀 다르다. 이탈리아 반도 남부에 붙어있는 섬이라는 지역적 특성 때문인지, 이탈리아 중부나 북부에서 볼 수 있는 세련미는 덜하다. 이슬람 왕국과 노르만 왕조의 지배를 거친 섬에는 아직도 이국적인 자취가 남아있었다. 2월말에도 따뜻한 날씨에 꽃이 활짝 만개한 곳은 자로 잰듯 깔끔하게 다듬은 정원이 아니라 아몬드나무와 벚나무를 심어놓은 과수원이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섬이었지만, 여전히 불과 연기를 뿜고 있는 에트나 화산을 품고 있는 섬은 문자 그대로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인지 여행하기에 모든 것이 편리한 ‘완성된 여행지’는 아닐지도 모른다. 대중교통이 열악한 것은 둘째치고 4차선 이상의 도로를 보기조차 힘들었다. 피아트 소형차를 몰아도 마음만은 슈퍼카 드라이버인 시칠리아 운전자들은 그 시골길마저 150km로 밟아가며 서행하는 앞차에 하이빔을 갈겨댔다. 비수기에도 사람들로 붐비는 피렌체와 달리, 날씨가 암만 따뜻해도 이 섬 기준으로 ‘비수기’인 2월에 시칠리아의 가게와 식당들은 문을 닫는다. 길 가는 사람에게 영어로 길을 물어 원하는 답을 얻을 가능성은 크게 기대하지 않는 편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그래도 이번 여행을 마치고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시칠리아행을 추천하고 있다. 육지와 비교도 안되는 싼 가격에 맛있는 음식과 와인을 즐길 수 있다. 시칠리아에서만 맛볼 수 있는 까놀리 같은 돌체, 에트나산 화산토에서 자란 포도로 만든 와인, 사면을 둘러싼 바다에서 잡아올린 해산물, 올리브유와 꿀 같은 싱싱한 식재료 등등. 정말 후술할 딱 한군데 빼곤 어디서 뭘 먹든 다 맛있었다. 파랗게 빛나는 바다와 야자수와 만개한 벚꽃과 까만 화산암 위에 쌓인 흰눈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섬이다. 이 섬을 거쳐간 그리스인, 로마인, 아랍인, 노르만인들은 시칠리아의 자연 속에 자신들의 흔적을 수놓았다. 시칠리아 사람들은 하이빔을 갈겨대며 과속을 종용하다가도 낯선 동양인 관광객이 곤경에 처할 것 같으면 차를 세워가며 도와주곤 했다. 영어를 못해 말이 안통하면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불러올 때까지 열심히 설명했다.

겨울에 갈만한 따뜻한 여행지 추천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주저없이 시칠리아를 추천하겠다. 아직 동양인 여행자가 흔치 않은 섬에서 정말 ‘외국’에 온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참고로 다니는 동안 동양인 여행객은 딱 네팀을 봤다. 한국2, 일본1, 중국1). 이 섬이 보여주는 다양한 얼굴을 마주하면서 맛있는 음식과 와인을 즐기다보면 어느새 섬을 떠날 시간이 다가오는게 아쉬워질게 분명하다.

▲팔레르모 노르만궁전 내부에 있는 '팔라티나 예배당(Cappella Palatina)'의 바닥 모자이크

▲아그리젠토 근교 해안가, '터키인의 계단(Scala dei Turchi)'

▲아그리젠토, 숙소 옆 과수원에 핀 봄꽃들

▲아그리젠토, 신전들의 계곡(Valle dei Templi)

▲시라쿠사에서 카타니아 가는 E45번 고속도로를 타고 가는 길에 본 에트나 산

▲에트나산 정상...은 아니고 중간쯤에 있는 분화구

▲아씨시, 성프란체스코 성당(Basilica di San Francesco)

▲몬테풀치아노 어디쯤인가, Val d'Orcia

▲피렌체 두오모의 쿠폴라(Brunelleschi's Cupola of The 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

=항공
: 이탈리아 국적기인 알리탈리아를 이용해 로마 환승편으로 팔레르모나 카타니아로 들어갈 수 있다. 이번 여행의 경우 알리탈리아 프리미엄이코노미석을 1인당 왕복 110만원에 구매했다. 로마까지의 실제 비행시간은 12시간 30분 정도였고, 로마에서 2시간 남짓을 기다려 팔레르모행 국내선을 탔다. 로마에서 팔레르모까진 1시간 정도 걸린다. 시칠리아를 떠날 땐 카타니아 공항에서 국내선을 탔다. 카타니아에서 피렌체 공항으로 바로 가는 부엘링을 탈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탑승 시간이 밤 11시로 바뀌어서 취소하고 로마로 가는 알리탈리아를 탔다. 가격은 둘이 비슷하게 한화 10만원 정도. 귀국할 때는 피렌체 공항에서 로마로 가서 환승하는 알리탈리아편을 탔다. 역시 프리미엄 이코노미석으로 발권했으나, 탑승시 게이트에서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 받았다.

=숙소
: 부킹닷컴으로 모두 예약했고, 9박의 총 숙소 비용은 대략 200만원 정도가 나왔다. 비수기 시칠리아의 숙박비가 쌌다. 제일 마음에 들었던 아그리젠토의 ‘Villa Athena’의 경우 5성급 호텔인데 신전이 보이는 좋은 방이 1박에 150유로 정도. 숙소에 대해선 각 포스팅에서 후술할 예정.

=렌트카
: 시칠리아에서는 AVIS를 이용했다. 길이 좁기 때문에 큰 차 빌리면 안된다는 조언을 듣고 갔고, 매우 일리 있는 말이었다.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차량인 ‘야리스’ 오토를 몰았는데, 차가 작아서 고속으로 달리면 좀 불안하긴 했지만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AVIS의 자체 풀커버리지 보험 덕에 돌 튀는 시골길도 안심하고 달릴 수 있었던 것은 덤. 로마부터 피렌체까지는 Alamo를 가장한 Locauto에서 폭스바겐 골프를 빌렸다. 차 사이즈나 다른 성능은 나쁘지 않았는데, 약간의 에피소드가 있었고 결과적으로 스크래치 때문에 385유로를 물었다. 그러나 다행히 렌탈카스닷컴의 풀커버 보험으로 환급 받았음. 아, 여기도 유럽이기 때문에 오토 차량을 몰려면 반드시 미리 예약해야한다. 일단 오토 차량 자체가 많지 않고 스틱보다 비싸다. "꼬레아에선 사람들이 대부분 오또마띠-끄를 모느냐, 대체 왜?? 그럼 마뉴엘-르는 잘 안 모느냐??"라고 의아해하던 팔레르모 AVIS 직원의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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