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1시간 40분 만에 나고야에 도착했다. 나고야 공항은 2013년에 출장으로 와보고 두번째였는데 적당히 설레는 공항 분위기를 내면서 너무 복잡하지 않은 편리한 공항이다. 입국장을 나와 무빙워크를 타고 나오면 인포메이션센터가 있고, 시내로 가는 '메이테츠'선 매표소가 있다. 여기서 가장 빠른 메이테츠선을 타고, 나고야역으로 갔다(메이테츠선은 급행, 일반, '뮤'가 요금이 다르다).
나고야역에 도착해 가장 먼저 '미도리노마도구치'를 찾았다. 예전에 모리오카역에서 JR동일본패스 사다가 기차 놓치고 아오모리 갈뻔한 아찔한 경험이 있어서 괜시리 긴장이 됐지만 역시 대도시 나고야의 위엄. 나고야역 미도리노마도구치 찾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Shinkansen and JR line tickets'라고 써있는 창구에 가서 부탁하면 된다. 일본어를 전혀 못하므로 영어로 말해도 '히다지 프리깃푸'만 제대로 전달하면 전혀 이상이 없다. 택시/버스 중에 뭘 고를건지, 몇사람이 쓸건지, 첫 목적지가 어딘지 등등 대화가 오가면 발급이 끝난다.
나고야역에서 시간이 좀 떠서 점심을 먹었다. 나고야역은 꽤 큰 역인데 'Taikodori side' 쪽으로 갔다. 역사 안에서 찾으려고 하지 말고 역사 밖 바로 앞에 '에스카(エスカ)' 지하상가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에스카 지하상가엔 야바톤(미소카츠), 이노우(히츠마부시), 야마모토야(미소니코미우동) 같은 나고야 맛집 분점들이 많이 입점해있다. 당연히 사람은 많고 어느 가게나 좀 맛있어 보이면 어마어마하게 줄을 선다.
이날 결국 간 곳은 '키시멘노요시다(きしめんの吉田). 1890년에 문을 연 유서깊은 가게의 분점이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이었는데도 사람들로 붐볐다. 자리를 잡고 자루텐(자루키시멘+덴뿌라)과 따뜻한 키시멘을 하나씩 시켰다. 나고야 음식인 키시멘은 칼국수 같이 납작한 모양의 우동인데, 따뜻한 가쓰오 국물에 말거나 차게 식혀 쯔유를 찍어먹는다. 2년 전 나고야에 왔을 때도 먹어본 적이 있는데, 거창하게 꾸밈 없이 소박하지만 기본이 충실한 맛이다. 단순한 맛의 육수에 쫄깃한 면의 조합은 훌륭했다. 여행 첫날을 기분 좋게 만드는 맛이었다.
밥을 먹고 기차시간이 되어 플랫폼으로 갔다. 창문이 넓은 기차가 기다리고 있다. 이래서 이름이 '와이드뷰'인가보다. 자리를 잡고 앉아있으면 기차가 역방향으로 출발한다. 모든 객차가 역방향이라 이게 뭔가 했는데, 조금 있으면 어느 지점에서 기차가 다시 정방향으로 가기 시작한다. 2시간 정도 달려 기차는 게로(下呂)역에 도착했다. 기차가 게로역에 서고, 승객들이 대합실로 들어서면 처음 보이는 게로의 풍경은 각자 료칸의 팻말을 들고 손님을 기다리는 송영버스 기사들이다. 유니폼을 정갈하게 차려입고 승객들을 웃으며 맞이하는 첫인상이 좋을 수밖에 없다. 인상 좋은 아저씨를 따라 유노시마칸 송영버스에 올랐다.
게로역에서 유노시마칸까지 가려면 히다강을 건너고, 온천마을을 가로질러 언덕배기를 올라야한다. 히다강을 건너다보면 오른편 강변에 노천온천이 보인다. 정말 주변에 건물 하나 없이 강변에 온천수가 모락모락 솟아나는 자연 그대로의 노천온천이다. 헉 하고 놀라는 사이 자세히 보니 온천욕을 즐기고 있는 사람도 보였다. 강을 건너고, 온천마을을 지나 언덕을 오르다보면 온천사라는 작은 절이 나온다. 언덕을 따라 이름 모를 나무가 시원스럽게 쭉쭉
솟아있다. 한국에서 보기 쉽지 않은 키큰 나무들을 신기해하다보면 웅장하게 솟은 고색창연한 건물이 나온다. 문화재로 지정돼 있는 '유노시마칸'
본관이다.
본관 앞에 송영버스가 서면 료칸 직원들이 나와 손님들을 맞았다. 버스 트렁크에 실은 캐리어도 손빠른 료칸 직원들이 안으로 들고 들어간다. 프런트에서 체크인을 하고 나면 나카이상이 나와 유카타를 고를 수 있도록 안내한다. 유노시마칸에서 자랑하는 서비스인 모양인데, 여성 손님의 경우 다양한 색깔과 무늬의 유카타를 취향대로 직접 고를 수 있게 한다. 키에 따라 사이즈를 구비해놨고, 2박 이상인 경우엔 바꿔 입을 수도 있다. 고른 유카타를 들고 방으로 향한다. 짐을 양손에 든 나카이상이 문을 열어주고, 방 안내를 도왔다. 정원을 조망하는 구관 객실은 아래처럼 생겼다.
▲유노시마칸 본관 객실 내부(출처: 유노시마칸 홈페이지)
은은하게 다다미 냄새가 나면서 세월의 흔적이 맵시있게 남은 방이었다. 구관 일반 객실엔 세면대와 화장실은 있지만 따로 욕실이 딸려있진 않다. 그 외엔 필요한 모든게 알차게 갖춰진 객실이었다. 특히 마음에 드는 공간은 창문 바로 옆에 있는 테이블과 의자였다. 바깥 풍경을 바라보면서 차를 마시기 좋은 공간이었다. 1층 객실이라 창 밖으론 섬돌이 놓여있고 게다가 두켤레 앙증맞게 놓여있었다. 방까지 안내를 맡은 나카이상은 방 이곳저곳을 설명하더니, 저녁식사와 다음날 아침 식사를 하고싶은 시간을 물었다. 원하는 시간에 저녁은 방 안에서, 아침은 식당으로 이동해 먹는 시스템이다.
조금 정신을 차리고 숙소 구경을 하다보니 저녁식사 시간이 됐다. 나카이상이 와서 저녁식사 준비가 됐냐고 물은 뒤, 오케이하면 상을 치운 뒤 떡벌어지는 가이세키 요리가 차려진다.
고급료칸이니만큼 가이세키는 훌륭하다. 싱싱한 재철 산지 재료의 맛을 살리면서도 멋내는 걸 잊지 않았다. 눈으로 보는 요리답게 손대기 아까울만한 플레이팅으로 나오는 요리가 많았음. 어느 하나 흠잡을 게 없었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 히다 지방의 특산물인 히다규(飛驒牛) 샤브샤브였다. 그림으로 그려넣은 듯한 마블링이 고운 쇠고기를 보글보글 끓는 육수에 투척하는데 고기가 꽤 두꺼워 익는데 오래 걸린다. 그러나 쇠고기이므로 다 익기도 전에 흡입... 일본에서 고베규, 마쓰자카규와 함께 최고급 쇠고기로 쳐준다는 히다규답게 입에 들어가면 착 달라붙더니 사르르 녹는다.
화려한 만찬이 끝나고 나면 료칸직원 두명이 '시쯔레이시마스~'하고 문을 두드린다. 이불을 깔아주러 온 것인데, 기합을 넣어가며 이불을 반듯반듯하게 펴내는 것도 나름 볼거리였다. 이불을 다 깔고 나면 척 고개숙여 인사까지 하고 방을 떴다.
이제 료칸 직원들이 방에 드나들 일은 모두 끝난 것 같아서 온천욕을 하러 가기로 했다. 유노시마칸엔 남녀
따로 쓰는 대욕장과 노천탕, 대절해서 쓸 수 있는 가족탕이 있다. 가족탕은 사실 그냥 프라이빗하단 거 외엔 목욕탕 분위기라
패스하기로 했고, 바로 대욕장으로 갔다. 대욕장과 노천탕은 연결돼 있으며, 매일 새벽에 남녀탕을 바꾼다고 했다.
온천물은 투명하다. 츠루노유 온천의 뿌연 유황온천수와 비교하게 됐는데, 눈으로 볼 땐 아주 맑고 별다른 냄새도 나지 않는다. 온천은 약한 유황 성분이 들어있는 알칼리성 온천이다. 온천에서 나오면 피부가 느껴질 정도로 보들보들했다.
▲유노시마칸 노천탕(위)과 대욕장(아래)(출처=유노시마칸 홈페이지)
온천을 하고 객실로 돌아오는 길엔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듯 맥주와 아이스크림을 파는 자판기가 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으므로 산토리 프리미엄몰츠를 하나 뽑아 객실로 돌아왔다. 창밖 의자에 앉아 바라본 숲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나무 바닥은 차가웠다. 차가운 맥주를 따서 한모금 넘기자 따뜻해진 속으로 청량한 기운이 퍼졌다. 피로가 사르르 녹았다.
TIP)
-유노시마칸 객실 내부에선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는다. 로비에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다
-유노시마칸 송영버스 이용을 위해선 미리 료칸에 전화해 도착시간을 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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