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쓴 아키타 3박 4일 여행기
#1 센다이, 하뉴 유즈루
출국일은 마침 평창올림픽이 폐막하는 날이었다. 인천공항 곳곳에서 선수단 추리닝을 입은 외국인들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올림픽의 여운을 찐하게 느낀 곳은 비행기가 내린 일본 센다이에서부터였다.
체감상(?), 그리고 아마도 실제로도 일본 최고의 동계올림픽 스타는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에서 무려 2회 연속 금메달리스트가 된 하뉴 유즈루인 것 같다. 피겨스케이팅에 PCS라는 점수구성이 들어가는 마당에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일지라도 여러 번 재활용하면서도 pcs를 잘 받는 하뉴 유즈루를 좋아한다고는 못하겠지만, 올림픽 2연패는 정말 대단하다.
그리고 이 하뉴 유즈루가 태어난 곳이 바로 도호쿠 지방의 중심 도시 센다이다. 일본 피겨 스케이팅 선수 중에선 유난히 나고야나 간사이 지방 출신이 많다. 이토 미도리, 아사다 마오, 안도 미키, 스즈키 아키코 그리고 이번 올림픽 남자 싱글 동메달리스트인 우노 쇼마는 나고야 혹은 그 인근 지방 출신이다. 미야하라 사토코, 사카모토 카오리, 다카하시 다이스케, 그리고 요즈음 뜨는 혼다 마린까지 간사이(오사카, 고베, 교토) 출신이다. 아마도 이 지역에 여러 기업들이 몰려 있다보니 상대적으로 일본 다른 지역보다 생활 수준이 높아서 빙상 인프라도 괜찮고, 피겨스케이트처럼 돈 많이 드는 서포트해줄 형편이 되거나 후원을 얻기가 용이한 점이 원인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하뉴는 다른 일본의 유명 피겨선수들과 달리 센다이 출신인데 아무리 도호쿠 지방 최대의 도시여도 센다이는 인구 규모로 보나, 산업으로 보나 나고야나 한신 지역에 비해선 좀 많이 약하다. 그 와중에 2011년 3/11 대지진의 직격탄까지 맞았다. 이날 실제로 하뉴는 아이스링크에서 연습을 하다가 지진을 맞아 급히 대피했었다고도 하는데. '상대적으로' 빙상 인프라가 약한 지역에서, 그것도 대지진이라는 크나큰 역경을 맞기도 했으나 올림픽 2연패를 했다는, 어쩌면 만화적이기까지 한 스토리는 과연 많은 사람들이 열광할 만하다.
센다이 공항 입국장에는 하뉴 유즈루의 대형 사진과 사인이 걸려있는 벽이 있다. 바로 옆 기둥엔 2011년 대지진 당시 초토화됐던 이 공항에 어느 정도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었는지 표시해주는 안내문이 적혀 있다. 그 앞 벤치에 잠깐 앉아있는 동안 지나가는 사람들이 대부분 하뉴의 사진 앞에 멈춰섰고, 그 사람들 중 대부분은 사진을 찍었다. 나도 사진을 한 장 찍었더니 하뉴의 사진과 기둥이 모두 한 프레임에 담겼다. 나름 열도를 들었다 놓은 스토리가 압축된 한 장 아닌가….
#2 료칸
일본을 여행할 때 가급적 료칸에 묵으려고 노력한다. 물론 늘 료칸에 묵었던 것은 아니다. '1인당' 매기는 비용이 꽤 부담스럽기 때문에, 료칸을 고를 때 따지는 조건에 맞지 않으면 그냥 차라리 가격이 더 저렴한 호텔로 간 적도 많다. 조건을 세세하게 늘어놓자면 길어지지만 대충 다음과 같다.
-온천, 그것도 노천탕이 있어야 한다; 료칸에 가는 첫번째 이유가 온천이다. 사실 온천의 수질까지 자세히 따지고 들 정도의 온천 매니아는 아니지만, 온천의 성분보다 더 중요한 건 노천탕의 유무다. 특히나 겨울에 료칸에 묵는 이유는 몸은 따뜻하고 머리는 차가워지는 노천탕을 즐기기 위함이므로, 노천탕이 없는 온천은 일단 거른다. 기왕이면 온천에 인공미가 잔뜩 가미된 것보다는 자연 그대로의 솟아나는 느낌?을 느낄 수 있는 온천이 좋다.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서 굳이 불편을 감수하며 버스가 몇시간에 한대씩 다니는 험한 오지에 있는 온천에 찾아가는 이유. 이러한 이유 때문에 교토의 료칸은 그 어마어마한 가격에 비해선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천년고도답게 지진이 그나마 드문 곳이라 그런가 자연 온천이 딸린 료칸이 교토 시내에는 없고, 아라시야마에나 가야 노천탕 딸린 료칸이 있는데 이 온천이 진짜 땅을 파서 따뜻한 물이 나오는 건지, 아니면 그냥 나오는 지하수를 데운 건지 알 방법이 없다(아라시야마에 있는 호시노야 교토에 온천이 없는 걸 보면 의심이 더 짙어진다).
-기왕이면 건물이 오래되고 고풍스러운 곳이 좋다. 이건 정말 그냥 느낌적인 느낌 때문인데, 왠지 새로 지은 시멘트 건물에 자리한 료칸은 정이 안 간다. 에치고유자와랑 노보리베츠에서 깔끔한 새 건물에 위치한 료칸에 묵은 적이 있는데 깔끔한 시설이 좋긴 했지만, 료칸의 운치는 느낄 수 없었다. 이런 면에서 제일 만족스러웠던 곳은 게로온천의 유노시마칸. 문화재로 지정된 본관은 불편하지만 삐걱대는 나무 바닥과 오래된 다다미 냄새와 건물을 채우고 있는 낡은 소품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참 좋았다.
-식사도 료칸을 고르는데 중요한 요소다. 료칸 홈페이지마다 자기네 료칸에서 어떤 음식을 낼지 써놓은 곳이 많은데, 대충 이걸 보고 음식 스타일이 맞거나 맞지 않는 곳을 고를 수 있다. 로컬푸드를 사용하는 료칸을 우선적으로 고른다. 단, 홈페이지로 보면 다 눈으로 보기에 감격스러울만큼 예쁜 음식 사진만 나오기 때문에 제대로 고를 수가 없었다. 적나라한 후기는 트립어드바이저나 구글맵에 나오는 일본인들의 리뷰를 번역기를 통해 참고했다. 인근 지역에서 난 제철 재료를 사용하되, 잘 먹지 않는 몇몇 식재료를 메인 재료로 내는 곳은 거르고, 또 눈으로 보기에만 예쁘고 쓰잘데기 없이 가짓수 채우는 가이세키를 내는 곳은 후기를 통해 거르다보면 대충 몇몇 곳이 추려진다. 아주 향토색 강한 음식을 내는 아키타의 츠루노유 온천 별관 '야마노야도'는 그런 면에서 음식이 아주 훌륭한 료칸이다.
이번 여행에선 3박4일 동안 두곳의 숙소에 묵었다. 원래는 예전에 묵어봤던 야마노야도에서 3박을 머무를 계획이었으나, 워낙 예약 경쟁이 치열한 곳이라 끝 1박만 숙소를 잡을 수 있었다. 그래서 다자와코 지역 숙소를 쟈란넷에서 찾아 구글와 트립어드바이저 리뷰들을 참고하다보니 '고마가타케 온천'이라는 곳이 눈에 띄었다. 건물도 고택까지는 아니지만 적당히 오래돼 보였고, 음식도 아주 지역색 강하면서 실속있게 나오는 것 같았고, 무엇보다 온천이 끝내주는 곳 같았다. 특히 강물을 바로 옆에서 보면서 온천을 즐길 수 있는 전세 노천탕이 매우 기대되는 곳이었다. 여기도 화실은 방을 못 잡아서 침대가 있는 양실을 예약했다.
결과적으론 아주 좋았다. 숙소는 적당히 오래된 건물을 깔끔하게 관리해서 아주 운치 있었고, 음식은 가짓수가 많진 않았지만 아키타 지방에서 나는 재료들을 사용한 특색 있는 요리를 즐길 수 있었다. 기대했던 온천은 기대 이상이었는데, 강변 전세 노천탕 두곳 외에도 실내 대욕장과 공용 노천탕 분위기가 고즈넉하고 온천물도 좋았다. 별이 쏟아질 것 같은 겨울 하늘 아래, 하얀 눈이 둘러싸고 있는 노천탕에서 온천욕을 즐기고 마시는 캔맥주는 꿀맛이다. 가격은 1박 1인 2식 포함해 11500엔. 16000엔인 야마노야도도 저렴하다고 생각했는데, 훨씬 싸다. 나중에 알고보니 고마가타케 온천은 경영난을 겪었던 곳을 츠루노유 온천 주인이 인수해 운영하는 곳이었다. 역시 츠루노유 온천을 운영하는 내공답게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그만큼 값진 명소로 만든 것 같다. 주인이 같은 곳이다보니 저녁 먹은 이후에 츠루노유 본관 온천까지 셔틀버스를 운영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3 과자점
다자와코 근처 사무라이 고택이 모여있는 가쿠노다테에 가기 위해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데 시간이 떴다. 구글맵을 켜고 역 근처를 살펴보다가, 지도상에 있는 과자점이 눈에 띄였다. 지도상으론 역에서 도보로 2-3분쯤 걸리는 곳인데 제설 작업이 한창이라 피해 돌아가는 바람에 시간이 좀 더 걸렸다. 간판도 작아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쳤을 조그만 과자점이었다.
'과자점'이라는 이름 답게, 식사빵류는 팔지 않고 양과자와 화과자만 판다. 양과자 종류는 그날 쇼케이스에 있던 것은 다쿠와즈와 쿠키들, 딸기 쇼트케이크, 초콜릿케이크 그리고 무려 몽블랑. 화과자는 딸기가 들어간 모찌와 도라야끼, 만주가 있었다. 막 나와서 포장되고 있던 다쿠와즈와 도라야끼, 만주, 레이즌 쿠키를 한두개씩 샀더니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설명을 친절하게 해주던 주인 할머니가 서비스라며 딸기 들어간 찹쌀떡을 봉투에 하나 더 넣어줬다. 역으로 돌아와 쿠키와 다쿠와즈를 한입씩 베어 물었는데 깜짝 놀랐다. 조금만 버스 타고 달리면 휴대폰 신호가 끊어지는 이런 깡시골 구석의 과자점에서 파는 과자라고 생각하기 어려울만큼 맛있었다. 동네 분위기랑 잘 안 어울리긴 하는데 모카크림이 들어간 다쿠와즈가 특히 맛있었는데, 겉은 적당히 바삭하고 쫀득했고 속에 들어간 크림은 느끼하거나 무겁지 않고 고소하고 신선한 맛이었다. 여행 중 이런 의외의 발견은 신기하면서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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