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온지 한달만에 남기는 신혼여행 후기 2- 서울&팔레르모>

결혼식날은 눈 깜짝할 사이에 휙 지나가버렸다. 사진을 아주 많이 찍었던 것 같고, 하도 웃는 표정을 고정시킨채 사진을 찍느라 나중엔 안면근육이 제멋대로 움직였던 것 같은 기억이 희미하게 남았을뿐이다. 오히려 선명하게 기억나기 시작하는 것은 결혼식이 끝나고 프레스센터 로비에 내려온 직후부터다. 태극기 집회 참석자들이 이미 프레스센터 앞을 가득 채우다 넘쳐 프레스센터 로비까지 점거하고 있었다. 채 한복을 갈아입지도 못하고 직원들이 뚫어준 길을 사수하기 위해 차에 올랐다. 차창 밖 풍경은 기괴했고 약간은 무서웠다. 다시 한번, 이 혼란을 뚫고 결혼식에 와 주신 분들께 너무나도 감사드린다. 신행 가는 비행기가 다음날 오후라 여유있게 머리도 손질하고 친정집에 놔둔 캐리어까지 들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플라자호텔로 왔다. 호텔에 짐을 풀고나니 허기가 몰려왔다. 생각해보니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그날뿐 아니라 드레스에 육신을 맞추기 위해 두달동안 저녁을 먹지 않은 고행을 겪은지라 허기에 시달리기가 일상이었던 나날이었다. 봉인이 풀렸다는 생각에 두달치 허기가 한꺼번에 몰리는 기분이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어이없지만 맵고 짠게 몹시 그리웠다. 피부가 뒤집어진다고 한동안 못 먹었으니깐. 남편한테 졸랐더니 의외로 쉽게 넘어갔다. 둘이 손잡고 르메이에르 빌딩으로 낙지철판을 먹으러 갔다. 불과 몇시간 전 태극기를 들고 나온 사람들로 가득했던 자리를 촛불을 든 사람들이 채우고 있었다. 집에 먼저 간 친구들이 ‘조경수역’이라고 알려준 광화문 사거리 인근 지역엔 아직 집에 가지 않은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과 촛불을 든 사람들이 섞여 묘한 긴장이 감돌았다. 그렇게 희한한 광경을 배경으로 회사 다닐때 데스크들이랑 자주 갔던 식당에서 낙지를 먹었다. 중부라인에서 한겨울에 손이 얼어터지는 와중에 집회 취재하다가 처음 알게된 사내커플의 결혼 첫 만찬으로 아주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음날 낮비행기였기 때문에 저런 여유도 부릴 수 있었다. 아무튼 다음날 오후 2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11시쯤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보딩패스를 받아들고 면세점 쇼핑을 좀 하다보니 시간이 후딱 흘러 보딩이 시작됐다. 타고갈 비행기는 인천에서 로마로 가는 알리탈리아항공 AZ759편. 이 비행기를 타고 12시간 반 정도(E티켓에는 12시간 55분이라고 나왔는데 실제 걸린 시간은 12시간반 남짓) 가면 로마 피우미치노 시간에 현지시각 오후 7시에 도착한다.

알리탈리아 항공은 처음 타봤다. 프리미엄이코노미석 티켓을 1인당 110만원쯤에 발권했다. 신행 가기 한달 전에 루프트한자 프리미엄이코노미-비즈니스석을 타고 다녀온 스페인 여행이 아주 만족스러워서, 기대했는데 결과적으론 가격대비 만족스러웠다. 루프트한자보다는 작은 듯하지만 그래도 우등고속 수준으로 레그룸이 넓은 편이었고, 발받침이 올라가서 다리가 덜 피곤하다. 기내식이야 원래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다만 한가지 아쉬운 것은 원래 지급된다고 알고 있었던 어메니티키트는 더이상 주지 않는 것 같다. 기내 엔터테인먼트는 한국어가 지원되지 않기 때문에 이 항공사를 이용한다면 자체 엔터테인먼트를 꼭 준비하시길.

▲여행 중 제일 신나는 순간. 타고 갈 출국비행기랑 인사하는 순간.

▲알리탈리아 프리미엄이코노미석 레그룸은 숏다리를 쭉 뻗어도 안 닿을만큼 널럴하다.

신부 입장곡으로 ost ‘A Whole New World’를 선택했을만큼 어린 시절 베스트 애니메이션이던 ‘알라딘’과, 시칠리아를 배경으로 찍은 영화 ‘말레나’를 기내에서 조금 봤다. 말레나를 조금 보다 만 것은 알라딘을 먼저 봤기 때문에 노트북 전원이 꺼졌으니깐. 영화 속 시라쿠사 두오모 광장은 하얗게 빛나고 아름다웠다. 먹다 자다 깨다 몸부림치는 사육의 시간을 12시간 넘게 버티다보니 모니터에 나타나는 위치는 이오니아해를 지나고 있었다. 드디어 이탈리아 근처에 왔구나.

▲이탈리아 국적기에서 파스타를 먹었는데, 놀라우리만치 맛이 없다. 기내식은 허기를 면하라고 주는 음식이니깐.

▲비행기는 계속 서쪽을 향해 날았고, 해는 서쪽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이오니아해를 지나며.

로마공항에 내렸다. 오후 7시 15분. 출발할 때 30분 가까이 늦게 뜬걸 감안하면 선방한 시간이다. 환승시간이 채 두시간이 되지 못한지라, 과연 짐이 사람 따라 무사히 팔레르모 가는 비행기에 탈지 조금 걱정이 되긴했다. 공항 터미널을 돌아다니기엔 몰골이 너무 쩔어있기도 하고 피곤해서 미리 탑승구 앞에 가서 앉아있었다. 오후 9시에 출발하는 팔레르모행 비행기는 밤 10시 30분쯤 도착할 예정이었다. 보딩 시작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면서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 줄을 서기 시작했다. 밤비행기인데도 만석인 비행기에 타려는 사람들의 얼굴엔 피곤이 묻어있었다. 줄에는 우리 말고도 한국인 한팀, 일본인 한팀이 보였다. 닭장같이 좁은 비행기에 사람이 다 타자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 뜨겠구나’ 생각하고 잠시 눈을 감았다 일어났는데도 비행기는 여전히 활주로에 붙어있었다. 시간은 이미 30분 넘게 흘렀는데. 이륙 허가를 받은 비행기들이 줄줄이 밀려있어서 이륙이 늦어진다는 방송이 나왔다. 숙소에 도착할 시간이 대체 몇시쯤일지 조바심이 들었는데 그 와중에도 눈이 감겼다. 아마 깨워서 일어났던 것 같은데, 눈을 떠보니 팔레르모 공항에 내려 있었다. 시계를 보니 10시 20분. 1시간 10분이 걸린다면서 40분만에 왔다. 슈퍼카의 나라답게 비행기가 슈퍼카급으로 질주한듯.

▲팔레르모 공항. 나름 시칠리아 주도의 관문인데, 카타니아가 더 경제 중심지라 그런가 공항이 그닥 크진 않았다.

공항의 첫인상은 낡고 남루했다. 짐을 찾는 카루젤에 갔는데, 우리 짐이 나오지 않았다. 걱정하던 일이 벌어진 것인가.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만약 짐이 분실됐을 때의 시나리오가 머릿속에서 돌기 시작했다. 아까 줄 설때 본 동양인 승객 몇명도 우리처럼 걱정스러운 얼굴로 컨베이어벨트를 응시하고 있었다. 짜증과 걱정이 뒤섞여 두리번거리던 눈에 ‘Baggage from non EU countries’ 사인이 보였다. 혹시나 하고 물어물어 non EU 국가에서 온 짐이 따로 도는 카루젤에 가보니, 눈에 익은 짐들이 마구 굴러다니고 있었다. 유럽을 여러번 다녔지만, 이렇게 아예 컨베이어가 따로 돌아서 사람 당황스럽게 만드는 공항은 처음이었음…

팔레르모 공항에서 팔레르모 시내까진 30분이 넘게 걸린다(고 구글맵님이 말해주셨다). 도저히 이 야밤에 초행길을 공항버스 타고 내려 찾아갈 자신이 없으므로, 그리고 우린 신혼여행 중이므로 택시를 탔다. 택시기사 아저씨는 영어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시내로 가는 도로 양옆으로 펼쳐지는 야경에 이런저런 설명을 매우매우 자세하고 친절하게 해주었다. 내 짧은 이탈리아어와 아저씨의 짧은 영어의 콜라보로 청해율은 60% 정도될 것 같은데, 저기 보이는건 팔레르모 시내, 저쪽 보이는덴 항구, 팔레르모에서 남쪽으로 얼마나 가면 몬레알레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호텔 문앞까지 택시가 진입할 수 없어서, 기사 아저씨가 ‘콰트로 칸티’까지 가서 내려주겠다고 했다. 야밤에 낯선 길에 내리는걸 걱정하는 표정을 눈치챘는지 아저씨는 택시에서 내려 짐을 꺼내주면서 “저기 보이는 ‘따박’ 간판에서 10걸음 걸어가면 호텔 문 앞이다”라고 알려줬다. 택시에서 호텔 문앞까지 거리는 대략 20미터 정도. 친절한 아저씨 덕에 팔레르모의 첫인상이 좋아졌다.

콰트로칸티에 있던 호텔 이름은 ‘Eurostars Centrale Palace Hotel’. 오래된 옛날 저택을 개조한 호텔이라 로비부터 매우 고풍스러웠다. 건물이 ㅁ자 형으로 생겨서 가운데는 중정이 있고, 차를 마시며 쉴 수 있는 테이블들이 있었다. 1층 곳곳엔 화려하게 살롱스타일로 꾸며놓은 휴게 공간에서 차나 초콜릿을 먹을 수도 있었다. 리셉션 직원의 친절도는 쏘쏘한 편. 너무나 감동적인 서비스는 아닐지라도, 불편하지 않게 챙겨주는 정도라 나쁘지 않았다. 1박 잠만 자다갈 호텔이라 시내 가까운 곳에 수페리어 더블룸으로 예약했는데, 방은 생각보다 넓었다. 침구도 깨끗한 편이었다. 객실 곳곳이 낡아서 수리가 필요한 곳이 보이긴 했지만. 도심 곳곳이 낡아가고 있는 팔레르모의 모습에 어울렸달까. 심각한 문제는 딱 한게 있었는데, 샤워기 헤드 부분이 지저분해서 좀 찜찜했다.

그냥 호텔에서 짐풀고 잘까 하다가, 그래도 하루 묵는 팔레르모의 야경이 아까워서 밖으로 나섰다. 쇠락한 도시 같은 분위기, 시칠리아 간다고 했을 때 사람들의 걱정어린 시선이 조금 걱정되어 카메라를 들고 가는 것도 불안했는데 웬걸. 그날 무슨 축제라도 있었는지 길에 사람도 많았고, 거리 곳곳에 색종이 조각이 떨어져 있었다. 아까 택시에서 내린 콰트로칸티는 정신차리고 보니 더 아름다웠다. ’네개의 모서리’라는 뜻의 ‘콰트로 칸티’는 팔레르모의 가장 큰 도로인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거리와 마께다 거리가 만나는 사거리였다. 사거리의 모서리의 건물은 분수대와 조각으로 장식돼있다. 장식은 삼단으로 이뤄져 있는데, 가장 아래쪽 분수는 사계절을 뜻하는 여신상, 2층 발코니는 스페인왕들의 입상, 가장 위쪽은 팔레르모의 수호성녀상이 서있다. 오렌지빛 조명이 아름답지만 낡은 조각을 비췄다.

▲사거리 하나만 잘 꾸며놔도 이토록 인상적이다. 콰트로 칸티의 야경. Quattro Canti..

마께다 거리를 따라 쭉 북쪽으로 올라갔다. 갑자기 길이 좀 넓어지더니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공터가 나타났다. 왼쪽에 그리스 신전을 닮은 큰 건물이 보였다. 어디선가 많이 본 건물이다. 구글맵을 켜고 보니 예상하던 그 건물이 맞았다. 영화 ‘대부3’에서 마이클 코를레오네가 소리없이 절규하던 그곳. 마시모 극장이 위풍당당하게 눈앞에 서 있었다. 오늘 공연을 막 마쳤는지,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레드카펫을 깐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이날 공연은 시칠리아 출신 작곡가 벨리니의 ‘노르마’. 시간이 맞았으면 보고 갔을텐데 아쉬웠다. 내가 노르마를 ‘너무너무너무너무 재밌다’는 표정으로 봤으면, 남편 박모씨는 그 표정을 ‘너무너무너무너무 신기하게’ 보다가 옆에서 잤겠지.

▲마시모 극장. Teatro Massimo. 낮에 봐도 멋졌겠지만, 영화 '대부' 시리즈의 팬이라면 밤에 가는게 좋은 것 같다. 가족들과 오페라를 보고 나오던 메리 코를레오네는 레드카펫이 깔려 있는 계단에서 총에 맞아 "Dad..."란 말을 남기고 죽었다. 무쇠같은 마이클 코를레오네가 절규하는 영화 속 장면도 이날처럼 오페라가 끝난 저녁시간이었다.

아쉬웠지만 마시모극장에서 사진만 열심히 찍었다. 큰맘 먹고 들고온 DSLR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있는데, 온갖 자세로 사진을 찍고 있던 우리를 바라보던 한 무리의 젊은애들이 있었다. 그중 한명이 다가와서 “사진 찍어줄까?”하고 물었다.

다가온 남자의 영국식 영어 억양이 굉장히 유창하고, 일행이 고급진 행색이라 사실 조금 망설였다. 고물 갤럭시노트로 찍는 얼큰이 셀카 대신 제대로 인간의 행색이 나온 투샷을 남기고 싶긴 했으니깐. 그래도 ‘먼저 사진 찍어주겠다고 다가오는 외국인은 일단 거절하라’는 여행 상식을 뿌리치지 못했다. 정중하게 “노땡쓰”라 말하며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더니,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었다. “꼬레아 델 수드”.

팔레르모의 일요일 밤거리가 생각보다 떠들썩해서 무사히 야경을 보고 호텔로 돌아와서 기절했다. 전날밤 호텔 욕실이 매우 험블해서(특히 물이 나오는 샤워기 헤드부분의 찜찜함) 못마땅했으나, 이튿날 조식은 매우 훌륭해서 언짢음이 조금 풀렸다. 조식에 나온 빵과 아란치니와 블러드오렌지주스가 되게 맛있었다. 아란치니는 시칠리아를 돌아다니다 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간식이다. 토마토, 고기, 야채 등등 다양한 소를 쌀에 주먹만한 사이즈로 뭉쳐서 고로케처럼 튀긴 건데 한개만 먹어도 배불러진다. 2월은 블러드오렌지가 제철이라는데 갈라놓은 오렌지는 정말 핏빛까지는 아니어도 제법 새빨갛다. 이 동네는 가는 호텔마다 모두 오렌지주스를 직접 짜주는게 아주 당연한 일이었는데, 호텔마다 가당/무가당 여부, 오렌지 종류 등등이 제각각이라 먹어보는 재미도 있었다. 여러군데에서 블러드오렌지주스를 마셨지만, 이 호텔에서 먹은 새빨갛고 적당히 새콤달콤한 주스가 최고였다.

아침을 먹고 호텔을 나와 콰트로칸티를 이루는 비토리오엠마누엘레 거리를 따라 10분 정도를 걸었다. 넓은 공터가 보이더니, 구름 한점 없는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거대한 적갈색 대리석 건물이 보였다. 푸른색 돔 지붕과 양파 모양 창문, 높이 솟은 첨탑과 아라베스크 문양으로 장식된 벽면, 그와 쉽사리 연결되지 않는 성인과 성녀의 조각들, 이곳이 일년 내내 온화한 기후임을 알려주듯 정원을 장식한 야자수. 팔레르모 대성당의 거대한 건물에는 이 도시를 지배한 세력의 흔적들이 그대로 녹아있다. 대성당으로 지어진 건물은 아랍인들의 지배를 받으며 모스크로 쓰이다가 다시 대성당의 이름을 되찾는 파란만장한 역사를 겪었다. 이 도시를 지배하고, 이곳에서 신을 찾았던 사람들은 저마다의 흔적을 건물에 공들여 깊이 새겼다. 그 때문인지 1000년째 신을 위한 건축물로 그 용도를 지키고 있었다.

▲보는 사람을 압도하듯 위풍당당한 팔레르모 대성당. Cattedrale di Palermo

대성당을 지나 또 5분 정도 걸어가니깐, 드디어 목적지인 노르만궁전이 나타났다. 비토리오엠마누엘레 거리와 맞닿은 면은 궁전의 뒷면이라 입구로 들어가기 위해선 또 한참 건물과 성벽을 돌아가야 했다. 궁전은 아랍인들이 지었다는 꽤 높은 성벽에 둘러싸여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이 궁전에 온건 부속 건물인 ‘팔라티나 예배당’을 보기 위해서였다. 팔레르모 대성당과 인근 도시 체팔루와 몬레알레 대성당은 아랍∙노르만 양식의 걸작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 그 중 가장 백미로 꼽히는 몬레알레 대성당에 꼭 가고 싶었지만, 동선이 꼬이는 고로, 과감히 버렸다. 대신 몬레알레 대성당과 가장 닮았다는 팔라티나 예배당을 보기로 한 것. 팔레르모에서 가장 손꼽히는 관광지+현재도 사용되는 주요 관공서 건물인지라 금속탐지기로 검사를 받는다. 궁전 1층에서는 시칠리아 연해에서 발견된 해저 유물 전시회를 하고 있었는데, 어차피 봐도 모르니깐 가볍게 패스하고 바로 2층의 팔라티나 예배당으로 갔다. 미사가 진행중이어서 마음대로 구경할 상황이 아니었다. 궁전의 다른 부분들을 구경하기로 했다. 궁전 일부는 시칠리아 주의회 의사당으로 현재도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보안이 시칠리아의 다른 명소들에 비해선 보안이 삼엄한 편이었지만, 그래도 의사당 내부에 앉아볼 수도 있었고 궁전으로 쓰이던 여러 방들을 돌아다닐 수도 있었다. 기억에 남는 공간은 중정과 회랑이었다. 기둥과 기둥을 잇는 아치로 ㅁ자형 중정을 만들었다. 얼마전 스페인 여행 갔을 때 그라나다와 세비야에서 본 무데하르 양식의 건물들의 중정을 꼭 닮았다.

다시 2층으로 내려가 팔라티나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미사가 막 끝나 경건한 공기가 남은 예배당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단조로운 멜로디의 성가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조개 모양의 성수대에서 성수를 살짝 찍어 성호를 그었다. 시선이 처음 꽂힌 곳은 천장. 8명의 천사들에 둘러싸인 예수님의 모습이 황금빛 모자이크로 새겨져 있었다. 신약 내용과 사도행전을 묘사한 정교한 모자이크화를 채운 금빛 배경이 성당 내부를 은은하게 밝히고 있었다. 성당 내부는 모자이크 외에도 아치와 양파 창문, 아랍식 건물 특유의 복잡한 문양들로 장식돼 있었다. 신을 섬기는 방식은 제각기 달라도 가장 아름다운 건물을 신에게 바치는 것은 이 섬을 거쳐간 정복자들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였나보다. 눈이 빠져라 천장만 바라보다가 문득 발을 딛고 있는 바닥에 시선이 멎었다. 바닥을 채운 섬세한 모자이크가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손이 닿지 않는 먼 곳만큼이나 손을 뻗으면 닿는 곳도 숨이 멎게 아름다웠다.

▲경건한 아름다움에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 팔라티나 예배당에서. Cappella Palatina

▲황금빛 천장 모자이크만큼이나 바닥을 가득 수놓은 모자이크 또한 환상적이다. 팔라티나 예배당에서. Cappella Palatina

<계속>


Posted by Alix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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