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결심하고 머리를 식히러 갈 여행지를 찾아보게 됐다. 오고 가는 길이 힘들지 않도록 거리가 가까울 것(직항편이 있을 것), 극기훈련 같은 여행일정 대신 맛있는 것 먹고 쉴 수 있는 곳일 것, 가을을 즐기기 좋은 여행지어야 할 것- 같은 조건들이 붙었다. 


어느날 웹서핑을 하다가 '일본 10대 단풍 명소'를 뽑아놓은 포스팅을 봤다. 불타오르는 듯 화려한 교토의 붉은 단풍, 은행나무가 펼쳐진 일본 어딘가의 도시 등이 상위권에 있었다. 그렇지만 정작 눈에 들어온 것은 거울같이 맑은 강가를 따라 펼쳐진 황금빛 낙엽송 숲이었다. 낙엽송 군락 너머론 높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가미코치(上高地)란 곳에 꽂혀버렸다.


가미코치는 일본 중부에 펼쳐진 '일본 알프스'의 3000m급 산들로 꼭꼭 둘러싼 곳이다. 교통편은 당연히 불편하고, 근처에 숙소도 마땅치 않았지만 낙엽송과 연못, 강물이 어우러진 풍경 사진만 봐도 눈이 정화되는 듯 청정함이 느껴졌다. 가미코치에 다녀온 사람들의 여행기를 참고해 코스를 짰다.


숙소는 가미코치에서 얼마 떨어진 기후현의 게로온천에 잡았다. 온천 명소로 손꼽히는 곳이라 마음에 들었다. 게로역에선 기차와 버스로 다카야마와 북알프스 지방을 당일치기로 다닐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게로에서 묵을 숙소는 80년이 넘은 유서깊은 '유노시마칸(湯之島館)'으로 정했다. 게로온천마을 중심부에선 떨어져 있었지만, 한적한 숲속에 있는 유서깊은 건물이 마음에 들었다. 삐그덕거리는 나무 바닥을 상상하며 그곳 구관을 예약했다. 여러 호텔 예약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지만, 유노시마칸 홈페이지에서 예약하는 편이 가격이 조금 저렴했고, 선택할 수 있는 플랜 옵션도 많았다(http://www.yunoshimakan.co.jp/ 영문 홈페이지 있음).



▲1931년 문을 열었다는 유노시마칸. 3박을 묵었던 본관 모습.


비행기는 중부지방의 관문 나고야공항을 이용하기로 했다. 북알프스를 여행할 때 도야마공항을 이용한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나고야 운항편이 편수도 많고, 비행기 시간도 마음에 들었다. 나고야에서 게로역까지 이어주는 'JR와이드뷰 히다'라는 재밌는 이름의 기차도 타보고 싶었다. 인천공항에서 아침 8시 50분에 출발하는 아시아나 항공을 이용했다. 대한항공, 아시아나, 제주항공이 나고야까지 직항을 운항한다.


▲게로에서 히다지방 여행의 중심지 다카야마(高山)까지 이어주는 'JR와이드뷰 히다'


'히다(飛騨)' 지방은 게로, 다카야마, 히다후루가와 등을 아우르는 지명이다. 게로에서 가미코지나 신호타카 같은 곳을 돌아다니는데도 꽤 교통비가 나갈 것 같아서 패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히다지방에서 이용할 수 있는 패스엔 두가지가 있는데,


1. 히다지 프리깃푸(17800엔/2인-사람이 늘 때마다 요금 싸짐)

-나고야역에서 살 수 있음.

-'JR와이드뷰 히다' 지정석 2회, 자유석 무제한 이용 가능

-버스나 택시 중 선택 가능. 버스 선택시 다카야마에서 히다지방 다니는 일반버스 무제한(히라유~가미코치 구간은 유료).

-유효기간 3일


2. 알프스 와이드 프리 패스포트(10290엔/1인)

-다카야마 '노히버스센터'에서 살 수 있음.

-다카야마 시내, 오쿠히다 온천마을, 가미코치 등 노선버스를 나흘동안 이용 가능

-JR와이드뷰 히다 타려면 돈 내야함

-유효기간 4일


유효기간이나 포함되는 교통수단의 차이 등이 있지만 내 경우 1이 더 쌌기 때문에 나고야 역에서 히다지 프리깃푸를 사서 사흘 동안 요긴하게 썼다.


계획표조차 제대로 안 짜고 시간을 하루하루 보내다보니 출국일이 됐다. 사실 놀고 먹고 쉬는 여행이었기 때문에 유럽갈 때처럼 복잡하게 계획표를 촘촘히 짤 필요도 없었다. 급하게 떠난 여행이었지만, 워낙 평화롭고 한적한 고장이어서 그런가 별다른 돌발상황도 없었고 아주 매끄러운 여행이 됐다. 쉬고 싶은데, 동남아의 휴양지 취향은 아니면서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온천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천할만한 코스였다.






Posted by Alix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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