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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봄눈

kaleidoscope/책 2021. 1. 31. 09:35


봄눈(豊饒の海 第1卷 春の雪)

미시마 유키오(三島 由紀夫) 씀

금방이라도 녹아 사라질 것 같이 위태로운 제목이 눈에 띄었다.

저자 이름에서 살짝 흠칫했다. ‘미시마 유키오’.
10여년 전 <가면의 고백>을 읽었을 때 탄복했지만, 누군가에게 읽을 책이나 좋아하는 작가 추천을 부탁 받았을 때 미시마 유키오를 자신있게 말하기엔 뭔가 움츠러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풍요의 바다> 시리즈는 2020년 말에야 <봄눈>을 시작으로 최초로 국내에 번역되었다.

그럼에도 그의 유작인 ‘풍요의 바다’ 연작 중 첫번째 작품인 <봄눈>은 <가면의 고백>을 읽었을 때만큼이나 아찔한 ‘읽는 기쁨’을 느끼게 해주었다.

추운 계절을 흘려버린 후 뒤늦게 내리는 봄눈은 찰나의 차가움을 발한 채 덧없이 녹아버린다. 겨울과 봄 사이에서 내리는 순간 최후가 예정된 봄눈은 그토록 애처롭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인 ‘금기’ 또한 그러하다. 기요아키와 사토코의 관계가 금기가 된 순간부터 경계에 선 아슬한 긴장과 불꽃같은 아름다움을 발하지만 결국 그 관계는 봄눈처럼 사그러질 것이었다.

결국 제목부터 새드엔딩이 예정되다시피 한 두 남녀의 관계지만 단순히 연애소설로 한정할 수 없는 면이 많다.

일단 한 문장씩 곱씹을 때마다 감탄이 나오는 문장들.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해 마치 악기 연주하듯 강약을 치밀하게 조율해낸 글맛을 음미하는 재미가 상당하다. 진부함을 거부한 표현들을 눈에 새기면서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내다 보면 마치 주인공들의 공간을 엿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때가 있다.

메이지시대가 끝나고 다이쇼시대가 시작될 무렵, 혼란하면서도 어찌 생각하면 풍요가 넘쳐 흐르던 시대를 배경으로 볼거리가 풍부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

<봄눈>의 냉기는 찰나일지언정 책을 덮은 후에도 숨막히는 잔영이 길게 남았다. 그 잔영이 채 완전히 가셔버리기 전에 <풍요의 바다> 연작 중 두번째 작품이 출간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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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lix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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