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후기 <6>

in the cloud 2021. 4. 13. 11:17

2021년 3월 23일

<입원 3일차: 대망의 수술 당일>

오전 4시쯤 일어나 좌약 관장을 한번 더 했다. 간호사 선생님이 전날 주고 간 포비돈스틱으로 배꼽 수술 부위를 한번 소독한 후에 다시 비몽사몽이었다. 전날 받은 압박스타킹을 신고 7시반에 수술대기실로 올라갔다. 간단한 인적사항 확인 등을 했다.

배정된 수술방에서 앞서 진행된 수술이 늦게 끝나서 대기실에서 한시간 반 정도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대기실은 몹시 춥고 으슬으슬했고 어수선한듯 조용했다. 이때가 제일 긴장되면서 심란했다. 누워있는 동안 어느 방에선가 집도의가 나와서 보호자와 스피커폰으로 대화하는 통화를 들었다. 예전엔 보호자 대기실로 의료진이 나가서 말해줬을 것 같은데, 이제는 보호자가 병원 내 이동을 못하므로 스피커폰 통화를 한 것 같다. 안타까운 통화 내용을 들으며 수술 중 보호자가 호출되는 일이 부디 없길 기도했다.

기다렸다가 실려간 수술방 침대는 생각보다 굉장히 좁았다. 얼굴 위로 가스 냄새 나는 마스크가 다가오더니 마취과 교수님이 “마취시작합니다. 하나 둘” 숫자 세는걸 다 못 들었는데 꼴까닥.

다음 순간은 회복실에서 “추워요 아파요”를 외치며 깨어났다. 알고보니 예상 수술시간보다 몇시간이 더 흘러있었다. 깨어나서 병실에 실려온게 어렴풋이 생각이 나는데 디테일은 기억이 안 난다.

병실에 온 시점부터 점차 선명하게 기억나는데 4시간 동안 흐려지는 의식과 싸우면서 심호흡을 해대고 쪼그라든 폐를 돌려놓기 위해 ‘공 부는 기구’를 불어댔다. 간호사 선생님이 코로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2-3초 후에 입으로 길게 내뱉으라고 알려주셨다.

열심히 심호흡과 폐운동을 하고 나면 입이 다 말라버리는데 물은 다음날 아침까지 못 마시므로 바싹 타는 갈증이 엄습했다. 갈증에 기도삽관 상처 때문에 목이 너무 아프니깐 생수 가글까진 해도 된다는데 잠시 입안에 머물다 빠져나가는 물이 너무나 달달했다. 총 입원기간 중에서 수술 직후부터 물 마시기 허락 받기 전까지가 제일 힘들었다.

배가 아프긴 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아프진 않았고 아주 아픈 생리통x2 정도였던 것 같다. 물론 그러다가 마취의 여파로 가래 낀 기침이라도 하는 순간엔 정말 으악 소리나게 아팠다.

다행히 난 PCA 부작용은 전혀 겪지 않았다. 무통주사는 정말 위대한 발명품이다. 그렇다고 계속 자동으로 들어가는 것 외에 PCA 스위치를 추가로 많이 누르진 않았다.

그런데 수술 중에 머리에 피가 몰린 건지 머리에 뭔 충격이 있었던건지 두피통증이 진짜 심각해서 얼음찜질을 하고 나서야 간신히 잠이 들 수 있었다. 난 이게 수술 부위보다 더 아팠다. 밤에는 37.4도 정도의 미열이 있었다.

수술 당일 저녁 교수님 회진 때는 수술이 잘 됐고 간이 조직검사 결과 악성 종양이 아닐 가능성이 크므로 복강경으로 그대로 진행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종양이 자라지 않은 쪽 난소는 수술시 아예 건드리지 않았고 종양이 있는 쪽 난소도 적출하지 않은 채 살렸다.

큰 시름을 내려놓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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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lix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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