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음악회: 보스트리지와 드레이트의 슈베르트III(백조의 노래)>
2019년 5월 14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이안 보스트리지(테너)
줄리어스 드레이크(피아노)
슈베르트의 연가곡 세개 중에서 한번에 완청(?)이 잘 안되는 걸 하나 뽑자면 ‘백조의 노래’다. 애초 작곡가가 빚어낸 연가곡이 아니라 그런걸까. 아무튼 오늘의 공연에서도 앞선 두 공연에서 감동했던 드라마가 느껴질지 좀 의문을 갖고 예당으로 향했다.
사흘 내내 같은 자리에서 공연을 보려고 S석 중 가장 앞줄의 정 가운데를 예매했는데, 얼마 전 모르는 번호를 전화를 받았다. 내 자리에 KBS 카메라가 설치될 예정이니, 자리를 두줄 앞으로 옮겨준다네? 표를 겟해보니 초대권이라고 뙇 찍혀있네ㅋㅋ 돈내고 샀는데!!!
사실 작년에도 보스트리지가 부르는 백조의노래의 일부를 실연으로 본 적이 있다 1번 Liebesbotschaft, 6번 In die Ferne 7번Abschied+앵콜로 4번 ständchen)설샹 실내악 시리즈 일환으로 보스트리지가 보컬, 사스키아 지오르지니가 피아노 반주자였고 그땐 슈베르트 레퍼토리가 만족스럽지 못했었다. 앵콜 세레나데는 괜찮았지만, 초반에 했던 슈베르트 세곡은 힘들어보였고 뒷부분 웬록엣지가 오졌던 기억이 난다. 오늘은 그래서 약간 걱정 반 기대 반 하고 갔다.
사흘 동안의 공연 중 오늘이 가장 좋은 컨디션에서 부른 것 같았다. 지난 두 회차에서 아쉬웠던 부분(호흡이라던가 저음이라던가)이 오늘은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담담할 때도, 사랑스러울 때도, 그리고 카리스마가 불을 뿜는 것 같던 순간도 있었다.
특히 13번 도플갱어는 내가 원래도 슈베르트 가곡 중 제일 좋아하는 곡인데 실연으로 들으니깐 하 정말 압도적이었다. 뻐렁치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너무나 하이네스러운 가사의 8곡 아틀라스도 좋았다. 묵직하게 가라앉는 공기에 눌리는 강렬한 느낌이었다.
다크한 노래만 좋았던 건 아니고 어부의딸이나 봄의동경처럼 그의 미성으로 그린 듯 아름답게 불러낸 곡들은 또 그대로 영롱하게 아름다웠다. 그리고 줄리어스 드레이크의 반주는 오늘도 빛났는데, 역시나 풍성한 색을 입히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드레이크 반주가 아니었다면 이 정도의 공연이 안 나왔으리라고 확신한다.
‘겨울나그네’나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처럼 전체가 뭉쳐 연속적인 스토리라인은 만들어낸 것은 아니나, '백조의 노래'를 이루는 곡 하나하나가 드라마였다. 마치 시리즈물과 단막극처럼 비교를 해야하나. 잠시도 흐름이 끊겨 붕 뜰 틈 따위 없었다.
원래는 뭐라고 길게 써보고 싶었는데 길게 쓸 수가 없다. 지난 사흘이 너무 좋았고 두분을 보내드리는게 몹시 아쉬우면서도 꼭 다시 보길 간절히 바라게 됐다. 한국에서 학교 다녔다면 누구나 그런 시간이 있었겠지만 고등학교 시절이 정말 힘들었는데, 그때 어쩌다 발 들여 마음에 큰 위안을 주었던 곡들을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실연으로 듣는 기분은 참 뭐라 표현하기가 어렵다.
오늘은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앵콜도 세곡이나 해주셨다(Der Wanderer an den Mond, Im Freien, Abschied). 앵콜 사건 때문에 찰나 기분을 잡치긴 했지만, 꿈 꾸는 것 같은 기억이 강렬해 떨쳐낼 수 있었다. 드레이크가 which means goodbye라고 소개한 마지막 앵콜 abschied이 끝나고 홀을 가득채운 공기가 잔잔하게 가라앉았다. 객석이 한참 여운과 침묵을 즐길 줄 아는 모습에 살짝 감동 받았다. 안다박수맨이 있었더라도 선뜻 손뼉을 치기 어려운 그런 분위기였다. 그 공간에 있었던 그 순간 사람들의 마음은 비슷하게 일렁였을 것 같다.
이안 보스트리지는 곧 심장판막수술을 앞두고 있다. 기회가 생겨서 "수술 잘 받고 쾌차해서 꼭 조만간 다시 두 분이 만드는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싶다"고 말을 건넸다. 꼭 그랬으면 좋겠다.
ps)자막은 오늘도 사소한 사고를 쳤는데 11번은 ‘봄날의 꿈’이라고 나왔는데 분명 독어로 Die Stadt라고 적어놓고 뭔 소린지... 이 순간에 주변 여러명이 프로그램북 뒤적이더라. 가사에 봄이라곤 1도 안나옴. 겨울나그네 가사 파일 수정하다 졸았나보다. 그리고 ‘날라가다’ 실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