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를라 브루니 내한 공연. 예전부터 참 좋아하던 가수였는데, 밥누나 ost로 까를라 최신 앨범에 실린 Stand by Your Man이 나와서 그런지 내한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와 이 언니(혹은 여사님..?) 진짜 멋있다.




공연장은 경희대 평화의 전당. 사실 브루니 노래는 소극장 공연에 잘 어울릴 법해서 공연장 선정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리가 다 찰까 싶기도 하고.

공연 15분쯤 전에 평화의전당에 도착했는데 어마어마한 줄이 서있었다. 이 줄이 뭔지 긴장하면서 스태프한테 물었더니 인x파크 예매 관객들 티켓 교환하는 줄이란다. 일단 줄을 섰다. 그런데 앞에서 스태프들에 뭐라뭐라 떠들고 사람들이 하나씩 줄에서 떨어져 나와서 앞으로 가는 거였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나도 앞으로 갔더니 웬걸? 인x파크 관객님은 여기 서란다. 그 엄청난 줄에서 10분 넘게 시간을 허비했다. 새로 선 줄에서 표를 교환하는데도 10분 정도 걸렸다. 공연장에 입장하니 8시 10분 정도. 자리가 많아 안 찬 상태라 자연스레 공연 시작도 미뤄졌다.



자리에 앉아보니 역시 꽤 좋은 자리였다. 시야에 감탄하며 앞을 본지 5분이 채 되지 않아 남녀, 그중 남자가 내 앞에 앉았다. 그분의 머리가 유독 존재감이 크게 시야 전체를 가로 막았는데 이건 어쩔 수 없다치고 이분 때문에 공연 내내 힘들었다. 셔터 소리를 내며 사진을 찍는건 물론 옆자리 여자분이 좋아하는 노래 동영상을 찍겠다고 팔을 치켜든채 폰을 핸드헬드로 찍고 있으니 브루니 여사도 밴드도 안보이는 것이었다. 결국 한마디했고 그제서야 촬영을 포기했는데, 15분이 채 지나지 않아 또 폰을 치켜들었다. 오늘 그 어느 공연보다 쪽팔림도 모르고 공연을 찍어대는 인간들이 많았다. 옆자리 남자도 노래 한곡 부르는데 셔터음을 찰칵대며 사진을 십수장씩 찍어댔다. 분명 공연장 입구에 사진 영상 찍자 말라고 써놨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배배 꼬일 정도의 지루함을 못 참아 폰부터 들어올릴 정도면 그냥 오질 말았어야지.

공연기획사의 허접한 운영과 개념없는 관객 때문에 불평불만이 길었는데, 공연 자체는 너무 좋았다. 브루니 여사님은 8시반이 다 돼서야 무대에 올라왔다. 까만 가죽 스키니팬츠에 네이비인지 블랙 탑을 입고 검은 재킷을 걸쳤다. 진짜 길고 늘씬하고 아름다웠다. 아, 이게 슈퍼모델이구나.

Le Chemin으로 시작해 불어노래 반, 영어노래도 반, 한곡은 이탈리아어로 불렀다. 진짜 끼가 흘러넘치는 사람이었고, 노래들 중 기교나 고음이 어려운 노래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진짜 매력적으로 불렀다. 영어 노래는 대체로 리메이크한 명곡들이 많고 불어노래가 대체로 자작곡이다. 근데 본디 다른 사람 노래였던 곡들도 편곡을 기가 막히게 해서 끈적끈적하고 뇌쇄적인 브루니 스타일로 소화한다. 그 간질간질한 목소리랑 찰떡같이 잘 어울리게. 물론 그 목소리로 프랑스어를 읊조릴 때 간질함은 배가 된다. 노래를 부르면서 그 긴 팔다리로 리듬을 타는데 엄청 팜므파탈 같았다. 문득 생각 났는데 이 언니(?)라기보다 여사님에 가까운 분 나이가 67년생이다.


꼭 듣고 싶은 노래가 몇 있었다. 브루니 노래에 입문하게 된 Raphaël, Quelqu’un m’a dit와 le plus beau du quartier, Tu es ma came, l’amoureuse가 꼭 듣고 싶었다. 영어 노래 중에선 Stand by Your Man이 듣고 싶었는데 그건 부를게 뻔했으니. 듣고싶던 노래 중에선 Quelqu’un m’a dit와 le plus beau du quartier를 불렀다. 무대 아래까지 내려와 부른 ‘까르띠에’는 넘 귀여운 노래였고 ‘마 디’는 낮게 읊조리는 멜로디가 정말 매력적이었다. 아쉽게도 라파엘은 너무나 전남친에 대해 노골적인 노래라서인지, Tu es ma came(당신은 내 마약)은 심의에 걸려서인지 안 불렀다.

아 그래도 정말 좋았다. CD랑 똑같은 라이브도 훌륭했고, 브루니 목소리로 소화해야 그 맛이 나는 노래들은 너무 달콤했다(노래가 쉽게 들리는데 커버했을 때 살리긴 쉽지 않다. 한참 기타 배울 때 Raphaël에 도전했다가 그 느낌이 아니라 좌절..) 노래 사이사이 멘트들도 성의있었고, 특히 여자 관객들이 많아서인지 여성들을 청자로 둔 멘트들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더더욱 멋있는 쩌는 언니 느낌이 폭발했다. 끝날 때도 앵콜도 두곡 부르고 손인사와 손키스를 날리며 멋있게 퇴장했다. 여사님 관객 호응 맘에 든 것 같던데, 앞으로도 쭉 멋있게 사시다가 또 내한해줬으면 좋겠다.

브루니 노래는 이렇게 날이 추워질 때 참 듣기 좋은 노래다. 찬바람처럼 쓸쓸하기도, 추위 속에서 찾은 온기처럼 따뜻하고 달콤하기도 하다. 언젠가 꼭 보고 싶은 공연이었는데 성공적으로 보고 와서 기분이 참 좋다. 당분간 브루니 노래를 많이 들을 것 같다. 그렇게 하기에 좋은 계절이니깐.
​https://youtu.be/02EGHkVR4-8

Posted by Alix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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