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6일 오후 12시 15분 인천공항을 이륙한 루프트한자 LH719 편으로 휴가를 떠났다. 

이날 면세점에서 화장품이나 좀 살까 하고 면세점을 뒤적거렸는데, 내가 사랑하는 키엘 CC크림 Fair 색상이 롯데 신라 등등 전면세점에서 품절이라는게 아닌가. 뭐 이런일이 있나 싶었다. 대충 돌아다니다 보니 얼추 보딩시간이 다가와 탑승구를 찾아갔다. 유럽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선 셔틀트레인을 타고 가야한다... 

특별히 아주 많이 불편한 건 아니지만 어느 공항에서든 뭐 타고 터미널 돌아다니는 거 딱 질색이다. 내 기억에 분명 작년 초에 에어프랑스 탈 땐 셔틀 안 탔는데 올초에 가보니 이건 뭐. 루프트한자도 탑승구가 세자리라 당연히(..) 셔틀을 탔다. 

유럽계 외항을 타면 승무원 중 한국인은 1/3 미만인 경우가 많다. 방학을 맞아 유럽여행에 오른 초등학생 자녀 동반 가족 단위 여행객이 많이 탔는데, 하아... 외국인 보고 환장해서 애들 영어시키는 건 좀 아니지 않나. 금발에 눈 파란 독일인 승무원이 지나가자 "ㅇㅇ야, 저 누나한테 영어로 말 걸어봐"시키는 엄마나 "Hey where we are now?"라고 물어보는 애나. 누군가가  말했듯 영어유치원의 효용테스트라도 비행기에서 해야 직성이 풀리나보다. 

대충 영화 두개 보고 깊지도 않은 선잠을 꾸벅꾸벅 졸면서 시간을 때우다보니 현지 시각으로 16시 50분에 독일 뮌헨에 도착했다. 이제 여기서 4시간 기다리다 취리히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고 취리히에 도착하면 얌전히 숙소에서 자고 다음날 일정을 시작할 계획이었다. 



▲거의 난민이 되었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예감하는 듯. 이 사진 찍은 내 몰골은 더 험했음...

뮌헨공항 와이파이 인심은 정말 감동이다. 속도도 꽤 빠른데 무료다. 물론 인천공항도 그렇지만, 파리 샤를드골은 유료고, 미국은 짤없이 유료다. 폰 충전기를 짐에 넣어 부친걸 약간 후회하며 배터리가 닳아가는 건 아랑곳하지 않은채(어차피 취리히 갈거니까!) 열심히 인터넷을 쓰다보니 어언 세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어기적어기적 탑승구 쪽으로 가는데... 이건 무슨 상황?

하아... 전광판에 선명하게 delayed 사인이 뜨는 게 아닌가.  뭐 얼마나 늦어지겠느냐... 싶어서 쿨하게 기다렸는데 

밤 9시에 뜨기로 한 비행기가 10시가 넘어가도 뜰 기미가 안 보였다. 결국 한시간 반쯤 기다렸는데 루프트한자 카운터에서 마이크를 잡더니, 뭐라고 블라블라 안내방송을 했다. 독일말로+독일말 같이 들리는 영어로. 뭔소리냐 싶어서 넋놓고 들었는데 'rebook' 한마디가 들렸고,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독일말 알아들은 사람들은 티켓 재발급 받는 카운터로 달려가고 있었다. 


우리가 달려갔을 때의 상황. 

여기서 또 한 40분쯤 기다렸다. 무슨 티켓을 어떻게, 언제껄로 rebook해준다는 건지 그때까지 상황파악이 안되고 있었는데, 전광판을 보니 이미 취리히 가는 비행기 사인은 내려가 있고 다음날 아침!!! 7시엔가 떠나는 비행기 사인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이 줄에서 정말 짜증이 폭발해서 소리를 지르고 싶을 지경이었다. 다리도 아프고 10시간 비행기 타고 와서 완전 쩔어있는 상태고 눈이 자꾸 감기는데, 줄 앞쪽에 선 사람들은 뭐 그렇게 카운터랑 할 말이 많은지 블라블라 얘기하면서 줄이 줄어들 기미를 안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동을 일으키기는 커녕, 항공사에 항의 한번 안 하는 독일성님들이 대단하긴 하다. 

'아... 오늘 스위스 못가고 다음날 이거 타고 가라고 하나 설마....'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데,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40분 기다려서 부스 앞에 서니까 실신할 것 같은 표정의 루프트한자 직원은 취리히행 비행기표(그래 그 다음날 아침꺼) 2장과, 뮌헨시내 호텔 투숙권, 공항과 호텔 왕복 택시 탑승권, 공항에서 뭐 먹을 수 있는 식권을 챙겨줬다. 

그리고... 공항을 떠나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짐은 모조리 부쳐버린 상황이라 치약칫솔도 없고, 클렌징 당연히 없고, 그건 둘째치고 하루종일 입고 구른 청남방이랑 면바지를 입고 눈을 부치란 소린데.. 재앙이었다. 루프트한자 배기지 클레임에 가서 "짐을 다 부쳐버렸는데 어떡하니"라고 징징댔더니, 친절한 독일 아줌마들이 무슨 꾸러미를 던져줬다. 

호텔까지 고속도로를 160km로 밟는데 전혀 속도가 느껴지지 않는, 위엄돋는 벤츠E클래스 택시를 타고 들어와 꾸러미를 열어보니 잠옷이랑 세면도구가 들어있었다. 인천공항 떠나면서 폰 끄던 그 순간 이후 처음으로 희열을 느낀 순간이었다. 이미 호텔 들어가니 시간이 새벽 1시였다. 세시간 잘 생각으로 간신히 눈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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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lix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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