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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me Minister's Questions(PMQ)

지난주 수요일 BBC와 가디언 등 영국발 기사를 읽다가 “I was the future once”란 문장이 눈에 띄었다. 이날 하원에서 마지막 PMQ를 마친 당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한말이다. 캐머런 전 총리는 2005년 그의 PMQ 데뷔에서 당시 토니 블레어 총리를 향해 “He was the future once”라고 한방 날렸던 멘트로 자신의 마지막 PMQ를 끝냈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의 마지막 PMQ

PMQ는 해석하자면 ‘국회 대정부 질문’에 제일 가까울 것 같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엄청 노잼일 것 같지만 구글에서 prime minister’s questions를 치면 funny가 자동완성으로 뜨는덴 그만한 이유가 있다.

매주 수요일 오후 영국 총리가 하원에 출석하면 PMQ가 열린다. 하원 의사당은 보수당과 노동당이 마주보는 구조로 돼있는데, 양 사이드 앞줄엔 총리와 야당 대표를 포함 각 당의 높은 사람들이 앉아있다. 뒷줄로 갈 수록 초선이나 젊은 의원들인듯. 암튼 의원들이 질문하면 총리가 일어나서 대답을 하는 방식이고 흘러가다보면 총리vs야당 대표의 구도가 된다.

특이한 건 질의 방식인데, 의원이 총리에게, 총리가 의원에게 직접 질문과 답변을 하는게 아니라 의장을 통해서 전달한다. 모든 말은 질문자나 답변자에게 직접 전달되는게 아니라 형식상 ‘Mr. Speaker’라고 의장을 부르며, 의장에게 전달하는 방식. 상대방을 저격하는 걸 피함으로써 의사 진행을 방해할 정도의 흥분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한다. 총리나 야당 대표는 dispatch box라고 부르는 상자 위에 손을 올려놓고 답변/질문을 한다.

상대편이 질문이나 답변을 하는 중간엔 살벌한 야유가 쏟아지는 일이 다반사. 자기편이 말할 땐 추임새도 넣고 환호도 한다. 대체 무슨 질문을 던질지 모르는데 어쨌거나 총리는 대부분 안 밀리고 답변을 한다. 총리와 야당 의원들 기싸움은 30분간 팽팽한 균형을 이룬다. 아무런 준비 없이 dispatch box에 서서 살벌한 공격과 야유에 꿀리지 않으려면, 일단 멘탈이 갑이어야 할 것 같고, 그 멘탈이 유지되려면 제대로 답변할 콘텐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진짜 PMQ가 대단한 건 바로 이런 부분이다. '아무거나 물어봐도 다 대답하는 것'.

지난 수요일 테레사 메이 신임 총리의 첫 PMQ가 있었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의 첫 질문은 이랬다.


If you’re young, you’ll find it harder than ever before to own your own home. In 1998, more than half of working households of people aged 16 to 34 were buying their own homes. Today, the figure is 25% and the Resolution Foundation suggests this will fall to 10% in the next nine years. What figure has the prime minister set herself for home ownership among young people?

그에 대한 메이 총리의 답변.

I notice the timeline that the right hon gentleman referred to. He might have forgotten that during that period we had 13 years of a Labour government, who had a very bad record in terms of house building. This is this government who is going to change that and this government that is putting more into building more homes to ensure that young people have a better opportunity to get on the housing ladder. That’s why we are a government who will govern for everyone in this country.

첫 문장에서 “젊은이들의 내집 마련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린 13년 동안 누가 집권했었는지는 까먹으셨나봄?”이라고 치고 나갔다. 이건 비교적 온건한 편에 속한다.

(7분 15초부터)

Has he got a reform plan for the NHS? No.
Has he got a police reform plan? No.
Has he got a plan to cut the deficit? No.
No wonder they’re going back to the former Foreign Secretary has just said this. The left is losing elections on an unprecedented scale because it has lost control of the political agenda. It’s losing key arguments and it has a deficit in ideas. That’s what he said and and he’s absolutely right.

며칠 전에 캐머런 전 총리의 PMQ 모음 영상에서 본 장면. 질문을 던진 사람이자, 여기서 말하는 he는 에드 밀리밴드 전 노동당 대표였고, the former Foreign Secretary는 밀리밴드의 형 데이비드 밀리밴드. No를 찰지게 외치는 보수당 의원들의 떼창이 일품이다.

이런 삐딱한 조롱과 깨알같은 개그와 날카로운 질의응답이 적당히 섞여있는데 꽤 재밌다. 분위기가 달아오르면 축구장 같은 분위기가 날 정도. 지역구 문제 등등 너무나 그네들만의 문제가 논의될 경우엔 흥미가 마구 떨어지는데, 최근 주로 나온 떡밥은 브렉시트, 안보, 이민 등등의 문제이니 당분간은 계속 재밌을 듯하다. 자리가 자리인만큼 쓰는 언어도 고급진 편이다. 몇시간씩 끄는 국회 대정부 질문과 달리, 시간은 30분 언저리로 제한돼 있다.

영국 의회의 유튜브 채널이나 팟캐스트 UK Parliament에서 들을 수 있다. 유튜브 채널의 경우엔 자막을 제공한다. 영국식 악센트에 큰 거부감이 없다면 영어공부 아이템으로도괜찮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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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Q를 보면 볼수록 어쩔 수 없이 한국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토론 혹은 대화의 모습과 비교하게 된다. 그리고 실망과 아쉬움이 몰려오는 건 어쩔수 없다. 기자 시절에 국정감사를 현장에서 지켜볼 일이 몇번 있었다. 국회TV와 지상파 방송을 통해 중계되고, 특별한 이슈라도 있을 경우 지상파 뉴스와 신문 1면을 도배할 수도 있는 국감 현장은 정치인들이 자기 PR을 위해서 놓치지 못할 현장이기도 하다. 

국감에 출석하는 장,차관, 기관장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의원들의 먹잇감(?)이 된다. 시선을 강탈하려는 분들은 일단 호통부터 치고 본다. 거의 반말조로 질의하거나, 목에 핏대를 올리는 분들도 자주 봤는데,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엔 그 의원에 대해 있던 호감마저 다 떨어져나가곤 했다. 대개 이런 분들은 질의 내용도 허접한 경우가 많았다. 질의 내용이 날카로워야 삐딱한 조롱도 면이 서기 마련이다. PMQ가 볼만한건 볼만한 대화가 오가서지 총리와 의원들의 퍼포먼스가 죽여줘서(?)만은 아니다. 제일 눈살이 찌푸려지는 분들은 정해진 질의시간에 질문은 허접하게 하거나 아예 생략한채 자기 할말만 장황하게 하는 분들이었다. 그런 의원 대부분이 자기 말하는 내용에 대해 전문가도 아니니, 재미도 없고 내용도 없고 알맹이도 없다.

고성이 오가는 국감장에서 하루를 보내고 오면 듣는 것만으로 힘이 쭉 빠지곤 했다. 그래서인지 충실하게 국감을 준비해서 정제된 언어로 날카롭게 질문을 던지는 의원들을 보면 힘이 날 때도 있었다. 아직도 현역이신 I의원, 지난 총선에선 안타깝게 공천을 못받았던 M의원 등이 그랬다. 특히 I의원은 말투나 표정은 온화한데, 궁금해할만한 자료도 많이 준비해오시고 쓸데없는 퍼포먼스를 다 걷어낸 질문만 던져서 국감 집중도를 확 높인 분이었다.

의원 뿐만 아니라 피감기관 기관장들도 비교되긴 마찬가지였다. 야당에 물어뜯기면서도 기죽지 않는 PMQ를 보면 총리들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해야하는지 확실히 알고 있다(대부분). 기자 생활 동안 지켜본 어느 국감에서의 일이다. 장관으로 온지 석달쯤 된 장관이 국감에 출석했다. 해당 부처 국감은 마침 그해에 있었던 어떤 사건 때문에 꽤 주목받는 자리였다. 여야 의원들은 작정한듯 장관에게 난감한 질문을 던져댔고, 그중엔 별거 아닌 질문도 있었지만 굉장히 중요한 내용도 많았다. 이날 장관이 제대로 답변을 하는 걸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존경하는 의원님 죄송합니다만 그건 제가 알아보고 답변 다시 드리겠습니다"는 말을 반복하거나, 장관 옆에 앉아있던, 공직생활 30년차쯤 되는 차관이 대신 답변하곤 했다. "차관 말고 장관한테 물었습니다, 장관 대답하세요"라는 호통이 쏟아졌다. 그 부처에 대한 질문뿐인데도 제대로 대답을 못했다. 지역구에 대한 지엽적인 질문을 던져도 여유롭게 받아치는 PMQ와는 비교가 민망할 지경이다.

국감은 기자 시절 마지막 큰 이벤트였다. 사표를 제출하고 나오면서 동기들을 만나 '올해부터는 국감 안 봐도 된다'고 했다. 국감은 고역이라고 질색했으면서, 굳이 PMQ를 찾아보면서 드는 씁쓸함은 이런 이유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Posted by Alix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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