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중 가장 더운 오후 2시. 기온은 30도에 육박했고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우울한 잿빛이었다. 마치 물방울 속에 갇혀있는 듯한 후텁지근한 날씨에 돌아다녔더니, 빳빳하게 다려입고 나온 청남방과 검은색 면바지는 땀과 습한 공기에 절어 흐물흐물해졌다. 갓 입사한 수습기자로 현장에 투입된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그날 전국에서 올라온 농민 만오천명이 서울광장에 모여 한중FTA 반대 구호를 외쳤다. 광장의 무거운 공기 속엔 긴장감이 스며있었다. 그을리고 주름진 얼굴의 촌부들이 검고 거칠어진 손으로 불끈 쥔 주먹을 허공에 휘둘렀다. 격앙된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며 답답함을 토해냈다. 다양한 말씨와 억양으로 외치는 목소리가 무거운 공기 속에서 어지럽게 섞였다.
현장을 스케치하라는 지시를 받고 왔지만, 솔직히 광장을 혼자 휘젓고 싶지 않았다. 처음 마주하는 종류의 혼란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불안했다. 언론사에선 대개의 경우 ‘무슨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수습기자에게 친절히 가르쳐주지 않았다. 일이 터지면 현장에서 부딪치면서 처리 방법을 배우길 요구 받았다. 사흘째 되던 날까지 나에겐 ‘큰일’이 닥치지 않았다. 그리고 ‘큰일’이 닥칠지도 모르는 현장에 나와있었다. 나는 이 중요한 순간을 혼자 판단해 부딪칠 용기가 부족했다. 만명이 어지럽게 뒤섞인 광장 안에서 동료라고 부를 만한 기자들을 어렵게 찾아냈다. 나와 같이 용산경찰서 2진 기자실에서 기거하던 S방송 수습 P와 K신문 수습 K, 이미 수습기자 처지를 벗어난 고등학교 동창인 K방송 S가 광장 한켠 무대쪽에 모였다. 시시콜콜한 수다를 떠는 시간은 간만에 맛본 꿀맛 같은 휴식이었다.
갑자기 어디선가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은 P가 “아 시발”하고 나지막한 소리를 내뱉었다. 나머지 셋의 시선이 P에게 쏠렸다. P가 선배에게 받은 메시지를 보여줬다. 우리가 수다를 떨던 시간에 광장 어딘가에서 이ㅁㅁ 의원이 분노한 농민에게 멱살을 잡히는 모습이 찍혀있었다. 사진이 인터넷에 뜬건 불과 10분여 남짓. 아직까지 회사에선 그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나는 욕을 무지막지하게 먹을 각오를 하고 1진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ㅁㅁ가 서울광장을 찾았다”는 소리에 선배는 흥분했다. 선배가 이ㅁㅁ와 관련된 지시를 내리기 전, 흥분한 그의 말을 잠시 끊고 “그런데..”로 운을 뗐다. 목에 걸려있던 “이ㅁㅁ가 사실 집회에 참석한 농민한테 빨갱이 소리를 들으면서 멱살을 잡혔다”는 이야기를 토해냈다. 개운치 않았다. 짧은 정적이 흐르고 선배가 바로 물었다.
“사진 찍었지?”
“사실 딴짓하다가 그 장면을 놓쳤다. 이ㅁㅁ가 와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는 말을 마저 뱉었다. 목에 걸려있던 것은 이제 모두 나왔다. 이제 쏟아지는 욕에 귀가 아플 차례였다.
선배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무조건 이ㅁㅁ 의원을 찾아서 심경을 묻고, 오늘 집회에 왜 참석했는지를 직접 물어봐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선배와 통화를 마치자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02-724로 시작하는 사회부 데스크 번호였다. 당시 캡이었던 L선배에게 호되게 혼이 났다. 전화를 끊고나서, 수습 첫주에 많은 것을 이미 망쳐버렸다는 절망감에 빠졌다.
뭐라도 만회해보려면 이제 만명이 넘는 인파를 하나하나 뒤지며 광장 어딘가에 아직 머물고 있다는 이ㅁㅁ를 찾아야 했다. P 본인은 그 순간을 놓쳤지만 용케 촬영기자 선배가 장면을 잡았다고 했다. 수습 말년이던 K는 매체 성향 때문인지 별로 당황하지 않았다. S는 수습이 아니었기 때문에 큰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수다는 넷이 떨었지만, 그 대가를 가장 크게 치러야 할 사람은 보수성향 매체의 사흘차 수습이었던 나였다. “친북 행보를 보였던 이ㅁㅁ 의원이 진보 단체가 다수 참석하고 농민 단체가 주도한 反 FTA 집회에서 ‘빨갱이는 북한으로 가라’는 소리를 들으며 멱살을 잡혔다”는 뉴스는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 중요하게 다룰 뉴스거리였다.
결국 나에게만 '큰일'이었던 것이다.
고맙게도 S는 이ㅁㅁ 의원과 보좌진이 아직 광장 한쪽에 자리를 잡고 집회에 참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행여 이번에도 놓칠새라 시야에 들어오는 사람 얼굴을 스캔해가면서 S가 가르쳐준 지점까지 갔다. 창백한 안색에 굳은 표정으로 무대쪽을 바라보고 있는 한 남자를 찾았다. 그는 정말 광장에 남아있었다.
나는 선배한테 전화를 걸어 이ㅁㅁ 의원을 찾았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선배는 지금 그 집회현장에서 말을 걸지 말고, 이 의원이 자리를 뜰 때쯤 따라가서 조용히 멘트를 따라고 지시했다. 한시간쯤 기다렸을까, 앉아있던 이 의원이 보좌진 한명을 데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배한테 전화를 걸어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보고했다. 마감시간이 임박했을 때라 전화를 끊었다가 다시 걸어 따로 보고하느니, 계속 통화중인 상태로 내가 이 의원 일행에게 질문을 하고, 그 내용을 선배가 기사로 쓴다고 했다.
이ㅁㅁ 의원은 서울광장을 나서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렸다. 건장한 남성 한명이 그를 따랐다. 나도 그들을 따라 움직였다. 신호를 기다리는 사이 아직 통화 중 상태인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이 의원에게 말을 걸었다.
“이ㅁㅁ 의원님이시죠?”
창백한 얼굴에 비해 유독 붉어보였던 그의 입매가 웃으며 대답했다. 눈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네 그런데요”
옆에 서있던 건장한 남자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기자세요? 실례지만 어디 매체 기자이신지?”
“안녕하세요 의원님, C일보….”
말이 끝나기 전 신호가 바뀌었다. 이 의원이 고개를 돌리고 걷기 시작했다. 옆에 서 있던 남성이 말했다.
“아시죠? 저희는 C일보랑 인터뷰 안하는 거…”
그들이 대한문 쪽으로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내 걸음도 빨라졌다. 앞에 가는 둘이 대한문 옆 정동길 초입으로 들어갔다. 시청 별관 앞을 지나 시립미술관 쪽으로 계속 걸었다. 어디까지 갈지는 알수 없었다. 시립미술관 앞 분수대가 보일 무렵 그들을 추월해 달려 나갔다. 길을 막아 섰다.
“저기 의원님 한 말씀만 해주세요”
“아니 의원님은 그쪽이랑은 인터뷰 안하신다니까요”
“누구신데 저한테 계속 말도 못붙이게 하세요? 전 의원님 말씀을 듣고 싶은거지 그쪽 말씀을 듣고 싶은게 아니에요
이 의원과 나 사이 공간을 가로막은 남자가 명함을 내밀었다.
<이ㅁㅁ 의원실 ㅇㅇㅇ 비서관>
명함을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시야를 막으려는 남자를 피해가며 계속 질문을 던졌다. 무슨 대답이라도 들어내야 수습 초장부터 지시 받은 일을 말아 먹었다는 자괴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의원님, 아까 농민들에게 멱살 잡히셨잖아요, 심경이 어떠십니까? 농민들에게 하고싶은 말씀 없으십니까?”
“인터뷰 안한다고요”
“의원님께 질문드린 겁니다. 의원님, 오늘 집회엔 왜 참석하셨어요?”
실랑이 벌이는 모습을 미동도 없이 물끄러미 지켜보던 그의 입이 마침내 열렸다.
“멱살 안 잡혔어요”
“멱살 잡히셨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지켜봤습니다. 농민들에게 하실 말씀 없으세요?”
“멱살 잡힌 적 없어요”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을 꺼냈다. 아까 받아둔 사진이 있었다. 성난 얼굴의 농민이 그의 양복 재킷 앞섶을 잡고 있었다. 그는 난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사진에도 찍혔잖아요. 의원님 한말씀만 해주세…”
갑자기 누군가 어깨를 확 떼밀었다. ‘아차’하는 사이에 돌바닥에 그대로 나동그라졌다.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은 멀리 날아가 뒹굴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두 남자는 이화여고 후문 쪽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쫓아가기엔 이미 거리가 너무 벌어졌고, 결국 놓쳤다. 그들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다보니 엉덩이가 시큰하게 아파왔다. 바닥을 짚으며 엉망으로 까진 손바닥에서 피가 비쳤다.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을 주웠다. 끊긴 전화를 다시 걸어 선배에게 놓쳤다고 보고했다.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정신을 바짝 차리라는 불호령이 쏟아졌다. 정동길 한복판에 우두커니 서서 쓴소리를 듣는데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졌다. 의식을 육체에서 분리시킬 것 같은 피로감이 길 한가운데에서 쏟아졌다. 걸어야했다. 2진 기자실이 있는 남대문까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한발짝 옮길 때마다 빗방울이 굵어졌다. 정신이 번쩍 들만큼 굵은 장대비가 됐을 무렵 문득 서러워졌다.
서러움이 뿌옇게 머릿속에서 뒤섞이자 질문이 튀어나왔다. 왜 나를 밀었나, 내가 질문을 해서, 질문이 잘못됐나, 하지 말아야 하는 질문을 했는가, 그렇다고 나를 떼밀어도 되는건가, 질문을 피하자고 왜 굳이 그런 방법까지 쓴걸까.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는 질문은 던져봐야 답답할 뿐이었다. 바닥에 쥐똥이 널려있는 남대문서 기자실에서 컴퓨터를 켰다. “멱살 잡힌 적 없어요” 한줄이 다음날 신문 기사에 반영됐는지 확인했다. 습기와 불호령과 엉덩방아와 장대비와 불쾌한 질문이 뒤죽박죽 뒤섞인 하루에 마침표가 찍혔다.
+++
뒷이야기.
밤 9시쯤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로 갔다. 1년 전보다 한층 뻔뻔해졌으니 마치 주민인양 태연하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29층을 눌렀다. 이ㅁㅁ 의원의 비밀 아지트로 알려진 곳이 거기 있었다. 한참 압수수색이 진행중이었다. 출입을 제지 당해 복도에서 압수수색 장면을 스케치했다. 압수수색을 진행하던 국정원 직원들이 화장실 문을 두드렸다. 이 의원의 DNA 확보를 위해 칫솔과 빗을 확보한다고 했다. 굳게 잠긴 문은 열리지 않았다.
“ㅇㅇㅇ씨, 문 부수겠습니다”
곧이어 연장으로 거칠게 문을 두드려 깨는 소리가 복도에 울려퍼졌다. “퍽” “챙” 문을 부수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거친 욕설이 들렸다.
“들어오는 놈은 대가리 박살낸다”
안에서 거친 몸싸움이 벌어졌는지 갑자기 우당탕 소리가 들렸다. 남자와 바깥 사람들 사이를 가로막은 벽이 사라졌는지 고성이 더욱 선명하게 들렸다. 남자가 복도로 끌려나오자, 밖에서 대기하던 직원들이 압수품을 가지러 우르르 들어갔다.
“어떠한 부정수사에도 응하지 않겠다”고 외치느라 목에 핏대를 세운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낯이 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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