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신씨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13년 연말. 기사 아이템 기근에 시달리던 추운 겨울이었다.
한국장기기증원의 홈페이지엔 ‘하늘나라 편지’라는 게시판이 있다. 세상을 떠나며 장기를 기증한 고인의 가족이나 친지들이 고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적을 수 있는 공간이다. 우연히 이 공간에서 아신씨 아버지의 편지를 읽었다.
아버지의 편지는 그해 4월부터 시작됐다. 편지의 간격은 몇달 사이로 뜸해지기도 했지만, 한주에 두통이나 올라오기도 했다. 아버지들의 말투가 흔히 그렇듯 편지는 무뚝뚝하고 투박했다. 딸을 잃은 아버지의 아픔이 너무나 날 것 그대로 드러나 있는 글이었다. 읽으면서도 마음이 아렸다.
그해 7월에서 계절을 건너뛰어 바로 11월로 이어진 아버지의 편지는 ‘너무 오랜만에 너를 찾아 미안하다’는 사과로 시작됐다. 아버지가 그 편지에 적은 새소식이 눈에 띄었다. “지난 9월 4일 네가 남긴 도서 1300여권을 정선에 있는 고등학교에 기증하고 행사를 가졌다”.
아신씨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장기기증원과 정선 여량고등학교를 통해 그에 대한 얘기를 간단히 들었다. 아신씨는 가족들에게 사랑받으며 자란 젊고, 아름답고, 똑똑하고, 착한 아가씨였다. 그런 딸을 잃고 애달픈 편지를 적어온 아버지와도 어렵게 연락이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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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네살이던 아신씨는 그해 3월 말 사고를 당했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미 아신씨의 뇌는 어떤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기계가 불어넣는 호흡과, 꺼질듯 뛰고 있는 심장만이 아신씨가 아직 살아있다는 신호를 미약하게나마 보내고 있었다.
사랑하는 딸이 뇌사상태에 빠졌다는 통보를 받자, 거듭 고민하던 아버지는 딸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결심했다. 대학원에서 특수교육을 공부해 어려운 아이들을 돕겠다는 딸이었다. 안락사 위기에 처한 유기견을 집에 데려오고, 생전에도 종종 장기를 기증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심장이 뛰는 딸의 장기를 다른 사람에게 기증하자는 뜻에 어머니는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나는 하기 싫어요, 우리 딸 오늘 낮에 입원했어요”라고 오열했다. 아버지가 거듭 “아신이가 떠나면서 누군가를 살린다면 먼저 갔어도 우리와 함께 세상에 살아있는 것”이라고 말한 뒤에야 어머니는 기증서약서에 서명했다.
아신씨의 신장은 만성 신부전증을 앓고 있던 20대 여성에게 이식됐다. 꽃피는 봄날, 아신씨는 큰 선물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아신씨의 부모는 상실감을 달래기 어려웠다. 집에는 딸의 흔적이 잔인할 정도로 가득했다. 잡지사 기자이자 아마추어 작가였던 아신씨는 생전에 3000권이 넘는 책을 차곡차곡 모았다. 딸이 아끼던 책향기에 섞인 아신씨의 잔향마저 부모에겐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아버지는 딸이 애지중지 보물처럼 여기던 책을 서가에서 끌어내렸다.
정신없이 책을 꺼내버리던 아버지가 잠시 멈칫했다. '책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선물한다면 하늘에 간 딸도 좋아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가족은 이왕이면 서점에 자주 못가는 산골학교를 골라 아신씨의 책을 선물하기로 했다.
강원도 정선 아우라지 근처로 자주 여행을 떠났던 아버지의 후배가 아신씨 가족에게 여량고등학교를 소개했다. 전교생이 스무명 남짓인 여량고에 책 1300여권이 우선 도착했다. 도서관 한면을 가득 채운 ‘아신문고(亞信文庫)’는 그렇게 태어났다. 아신씨 가족이 계속 책을 선물해 지금은 장서가 수천권으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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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신문고’ 이야기는 2014년 1월 30일자 신문에 나왔다. 기사는 내가 썼고, 당시 수습이었던 한살 아래 여자 후배가 취재를 도왔다. 후배는 강원도 정선에서, 나는 서울에서 아신씨 아버지를 만났다.
평생을 바쁘게 살면서 자수성가한 어르신이었다. 무뚝뚝하고 고지식한 우리 아빠가 생각났다. 아빠나, 아빠를 닮아 무뚝뚝한 딸인 나나, 안 끊기고 서로 대화하는 법을 잘 모른다. 아신씨 아버지도 나와 후배를 보며 아신씨가 생각난다고 했다. 나는 아신씨의 대학 후배, 후배는 아신씨 아버지와 같은 고향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대답없는 딸에게 가끔씩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했다. 어느날 집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주변이 따뜻해지면서 아신씨가 다녀간 것을 느꼈다고도 했다. 꼬마들이 지나가면 어린 아신씨가, 여고생들이 지나가면 고등학교 시절 아신씨가, 나와 후배를 봐도 그 또래 시절 아신씨가 생각난다고 했다.
아신씨 이야기가 신문에, 방송에 나오면서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기사가 나온 뒤 다시 ‘하늘나라 편지’ 게시판에서 편지를 하나하나 읽다가 아신씨 지인들이 남긴 댓글을 발견했다. 사는게 바빠 연락이 뜸했던 지인들이 아신씨의 소식을 들은 것이다.
‘제가 찾는 그 사람 송아신이 당신이 아니기를’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했는데, 가슴 아픈 소식을 오늘에서야 뒤늦게 접하게 될줄은 몰랐습니다’
장문의 댓글에 드러난 그녀의 생전 모습은 아신씨 아버지가 추억하던, 나와 후배가 머릿속으로 그려보던 모습과 매우 닮아있었다. 책과 강아지만큼이나 남에게 베푸는 일을 좋아하는 모습. 좋은 추억을 함께 만든 사람이 갑작스럽게 이승을 떠났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게된 짙은 후회와 슬픔이 묻어났다.
기사가 신문에 나온 뒤에 아신씨 아버지와 만난 적이 있다. 나와 후배, 아신씨 아버지, 여량고를 소개한 아버지의 후배 이렇게 넷이서 저녁을 먹었다. 그날 아버지는 방송 녹화를 마치고 온 길이라고 했다. 아신씨 이야기를 좀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을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했다. 아신씨 아버지는 붉어진 눈을 깜빡거리며 "무뚝뚝한 경상도 아빠라 딸에게 살가운 말 한마디 해주지 못한 게 후회된다”고 몇번이나 말했다.
나는 아신씨 아버지가 걱정됐지만 그는 생각보다 더 강한 사람이었다. 아신씨 아버지는 장기기증자 유가족으로 이뤄진 합창단이 됐다. 장기기증을 알리는 홍보대사 일도 맡아, 자신처럼 가족을 떠나보낸 장기기증자 유족을 위로하고 있다. 사후 장기기증을 서약한 아버지는 술도 끊었다.
아신씨 이야기를 취재하면서, 슬픔에 잠긴 그녀 부모님에게 감히 어떤 말을 던져야 할지 알 수 없어 고민이 깊었다. 슬픔, 후회, 추억, 위로…여러가지가 뒤섞인 아슬아슬한 대화가 두렵고 무거웠다. 그때는 몰랐지만 아신씨는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남기고 떠났다. 그녀가 남긴 것들은 그냥 남겨진 채 머물지 않고 잔잔한 변화를 불렀다. 누군가의 삶은 이승에서 떠난 이후에도 더욱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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