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8시 30분쯤 인사동에 대단한 불이 났다. 불이 나던 그 시간에 청계천 광통교 부근에 있다가 갑자기 '쾅!'하는 소리를 들었다. '어디서 뭐가 터졌나'라고 생각했지만 설마 진짜 뭐가 터졌을 줄이야...

 불이 난 곳은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255번지.  일명 '먹자골목'이다. 

광통교에서 다리를 건너 종각 쪽으로 가다보니 불길이 보였다. 진짜 새빨간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는데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는 그 때 다시금 '쾅'하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움찔'할 정도로 소리는 컸다.  

 매캐한 냄새가 싫어서+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괜히 현장에 있다가 밤새 화재 취재를 할까봐 얼른 코를 막고 현장을 떴다. 오랜만에 일찍 끝나 아픈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가는 길이었는데 괜한 봉변을 당하기 싫었다(마침 불이 났을 때 종로라인은 텅텅 비어있었다).

집에 들어와 텔레비전을 켜고 뉴스를 보는데 화재 현장 영상이 나왔다. 역시나 우려하던 그곳이었다. 

 

 

/출처 : 네이버 거리뷰

 바로 이곳이 어제 밤 화재로 사라진 인사동 255번지다. 1층에 있던 '육미'는 종로에서 직장을 다녀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가봤을 법한 곳이다. 어렸을 때부터 이 근처에서 활동(?)했던지라 합법적으로 술집에 드나들 수 있는 대학 신입생 때부터 이 집을 드나들었다. 지극히 아저씨적인 술집이었지만 해물 안주가 괜찮은 편이라 친구들 데리고 꽤 갔었다. 

여기서 했던 기억 나는 모임은 레자싸 모임이 있다. 레자싸(Les Assas)의 마지막 모임을 여기서 했던 것 같은데, 그 때 아마도 꼬막 안주랑 매화수를 먹었던 것 같다. 그 이후엔 한동안 육미에 간 적이 없고 작년 연말엔가 한번 갔었다. 여전히 사람 많고 시끄럽고 주문해도 전달도 잘 안되는데 '도대체 내가 여기와서 왜 이 정성을 들여가며 술을 먹고 있는가'에 대해 고민을 하며 술잔을 기울였던 기억이 난다. 

오랫동안 발걸음하던 곳이 하루 아침에 허무하게 사라질 줄 알았더라면 조금 덜 구박할 걸 그랬다. 사라진 것은 육미 뿐만이 아니다. 건물 8채가 전소됐다니 그냥 이 골목 전체가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 육미의 허접한 식탁과 의자, 소쿠리에 담긴 안주, 이빠진 그릇, 언제가도 시끌시끌한 분위기, 그 안에서 상대방이 알아듣게 말하려고 목청을 높이던 것, 짭쪼름한 꼬막안주, 헛소리는 다 기억 속에만 남아있을 것들이 되어버렸다. 아주 허무하게, 정말 순식간에. '다음번에 가지 뭐'라는 건 영원히 지킬 수 없는 약속이 돼 버렸고. 믿어지지 않아서 현장에 가볼까도 생각했는데 괜히 보고 멘붕할까봐 아직은 그냥 추스리고만 있다. 

아마 이번 화재를 계기로 오래된 골목들이 또 많이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골목 속 보석같은 장소들도 많이 사라지겠지.

파리, 베네치아, 런던을 돌아다니면서 오래된 골목들만 쑤시고 다녀도 재미있었는데.  슬픈 일이다. 



※'육미'는 2014년 6월 현재 중구 다동의 한 건물 지하로 옮겨 다시 문을 열었다.


 

Posted by Alix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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