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는 시인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한번도 본인 입으로 시인이 되고 싶다고 한 적은 없다. 그런 말을 직접 할 분은 아니었다. 손때에 낡아가던 시집과, 소파에 앉아 공책을 펼칠 때마다 시구를 적곤하던 모습을 지금 와서 떠올리니 아마 그랬을 것 같다. 서재엔 이오덕 권정생의 동시집부터 김영랑 윤동주 시집이 국어사전 옆 한켠에 가지런히 꽂혀있었다. 먼지가 앉을 사이도 없이 책꽂이를 자주 드나들었다. 그러는 동안 책표지는 너덜너덜해졌고, 노랗게 물든 책장엔 곰팡내가 스몄다.

형제 많은 집의 차남은 만류를 뿌리치고 기어이 사범학교에 들어갔다고 했다. 서울 한복판에 자리를 잡을 때쯤 사남매가 오종종 태어났다. 아이들이 학교에 갈 무렵 형제 중 가장 똑똑한 막내동생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뒷바라지 했던 형님이 돌아가셨다. 일년내내 끊이지 않던 집안의 대소사도, 동생들을 챙기는 것도 당신의 몫이 됐다.  

기분 좋게 술에 취할 땐 당신이 공책에 쓰신 시를 펼쳐 읽어주기도 했다. 아마 나이 60이 훌쩍 넘은 그때야 당신 마음대로 시를 쓰실 수 있었을 것이다. 어떤 시였는진 사실 너무 어렸을 때라 안타깝게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꽤 유심히 들었던 것 같은데. 손주들 중에선 유일하게 학교 다닐 때 가끔씩 글을 써서 상을 타오곤 했기 때문인지, 시를 읽어줄 때마다 제일 유심히 들었던 손주였기 때문인진 모르겠다. 애지중지 여기던 이태준의 '문장강화'는 내가 물려받았다. 

시를 좋아하던 할아버지는 음악도 좋아했다. 곰팡내가 나도록 남루한 서재엔 어울리지 않게 으리으리한 오디오가 있었다. 괴물처럼 커보이던 스피커에선 포효에 가까운 음악소리가 흘러나왔다. 가끔 눈물이 날만큼 섬세한 피아노곡이 들려올 때도 있었다. 말러와 쇼팽의 곡이었다는 것은 그 남루한 서재도 으리으리한 오디오도 전부 트럭에 실려 나간 뒤에야 알게 됐다. 어느날 함께 '도전 골든벨'을 보다가 흘러나오는 'Time to Say Goodbye'가 사실 이별 통보가 아니라, '너와 함께 떠나겠다'는 의미의 노래라는 걸 알게 된 것도 할어버지가 사라 브라이트만의 팬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할아버지가 언제고 나보다 더 선명하게 기억할 줄 알았다. 나는 모든 것을 머리에 담아두기에 너무 어렸고, 할아버지는 이미 어른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기록하지 않은 기억은 그저 없어지고 말았다. 나는 어려서 담아두지 않았고, 할아버지의 기억은 언젠가부터 아주 빨리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던 할아버지는 간혹 말 안 듣는 국민학생처럼 어른들에게 떼를 쓰곤 한다. 며칠 전엔 어른이 된 자식들에게 혼날걸 뻔히 알면서도, 지나가다 본 '꼬까신'을 사달라며 고집을 부렸다. 그날 일 때문에 함께 '꼬까신' 노래를 읊조리기도 했다는 사실을 아주 오랜만에 떠올렸다. 당신이 학생들에게 가르쳤던 노래를 나도 알고 있다는 사실에 그때도 어린애처럼 기뻐했다. 

나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잠시 아무 소식도 듣지 않았다. 할아버지 소식을 그제 저녁 갑자기 들었다. 꼬까신 때문에 뿔이 난 상태로 몰래 술을 마시고 잠깐 밖에 나간 사이 넘어졌다고 했다. 2년 전 겨울 뇌졸중을 앓은 뒤 할아버지는 거동이 불편하다. 병원에 실려가서도 할아버지는 떼를 썼다고 했다. 아마 하루종일 뿔이 난 데다가 몸이 말을 듣지 않는 노여움에 소리를 지르고 욕을 했을 것이다. 손녀딸 친구가 있는 병원이라고 하자, 할아버지가 갑자기 조용해졌다고 엄마가 전해줬다. 왠지 모르게 나는 그게 더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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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lix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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