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식사를 위해 방문한 권숙수. 한식 파인다이닝은 매우 오랜만이라 기대가 컸던 곳이다. 예약이 매우 힘들었다. 통화 연결도 잘 안되고 포잉 앱 답변도 늦었지만 운좋게 한자리가 비어 예약에 성공.


​자리 안내를 받아 들어가면 테이블 위에 소반(?)이 인당 하나씩 놓여있다. 귀여운 사이즈라 매우 탐이 났다. 젓가락질을 하는 음식을 먹을 땐 딱 적당한 높이라 좋았는데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는덴 조금 불편한 세팅이긴 했다. 한식 커트러리는 유기 반상기, 양식 커트러리는 큐티폴 누어를 세팅했다.

런치코스는 아페리티브-전식-본식-후식으로 구성돼 있다​

▲ Welcome Drink with Small Appetizer / 우리 술과 작은 안주를 곁들인 주안상

코스는 김포특주와 함께하는 주안상으로 시작. 밤죽, 조선간장을 발라 만든 육포, 곶감과 크림치즈말이, 문어족편, 참죽나물 부각, 감자칩이 나온다. 순한 밤죽으로 시작해 도수가 높지 않은 달달한 술에 안주를 곁들여 이것저것 맛보기 좋음.


​▲ Salted Sea Urchin and Pickled Vegetable with Sea Bream Sashimi / 성게 젓갈과 장아찌를 곁들인 도미회

오늘 식사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도미 숙성회. 비주얼부터 눈을 사로잡았다. 접은 회 세 점 안에는 성게젓과 당귀 짱아찌를 공통으로 각각 캐비어, 연어알, 산초짱아찌가 들어있고 들기름을 뿌렸다. 잘 숙성된 도미회가 다채로운 색깔을 부각시켜주는 맛.

​▲ House made Dubu with Cold Salad / 특별한 두부 냉채

직접 만든 두부로 만든 냉채. 매일 아침 직접 만들었다는 두부를 으깨 물기를 빼고 들기름과 채썬 야채를 곁들인 요리였다. 채썰어 나온 저것들에 대해 설명을 들었었는데 까먹... 깻잎 정도의 강한 향은 아니지만 은은한 향이 났다. 두부는 물기를 뺐는데도 부드러운게 치즈의 식감에 가까웠다. 자칫 튀려는 맛을 들기름이 녹아들듯 잡아주는 건 앞에 나온 도미회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닭고기와 시래기를 채운 전병구이. 전병 안에 닭고기, 시래기, 표고버섯으로 만든 소가 들어있고 쪄내서 얇게 저민 애호박과 곰취짱아찌를 곁들여 먹는 요리였다. 닭고기라는 흔한 식재료로 만든 전병과 애호박의 조합이 밋밋해질 뻔했는데, 곰취 짱아찌는 악센트를 주는 신의 한수였던 것 같다. ​

​메인이 나오기 전 샐러리를 곁들인 토마토 소르베로 입가심을 하고...


▲ Grilled Market Fish and Seafood with Maesaengi Crab Porridge / 게살 매생이죽을 곁들인 제철 생선과 해산물 구이

메인은 '게살 매생이죽을 곁들인 제철 생선과 해산물 구이', '민어 솥밥과 제철반상' '40일 숙성 한우 등심구이와 흑임자 두부장', '숙성 한우 등심구이와 흑임자 두부장' 중에서 택할 수 있었는데, 한우 요리는 추가 차지가 좀 쎘다. 앞의 두개 중에 고민하다가 넷 다 해산물 구이를 고르는 웃기는 상황ㅋㅋ 옆테이블에서 민어솥밥 직접 지어주는 걸 보고 저거 먹어볼걸 하고 조금 후회했다. 매일 달라진다는 오늘의 생선은 가자미였고, 관자, 가리비, 새우, 대게를 구워 매생이 죽과 곁들인 디쉬가 나왔다. 레스토랑의 수준에 어울리게 구운 정도는 훌륭했고, 단백질에 곁들일 탄수화물로 표고버섯으로 악센트를 준 매생이 죽은 잘 어울리는 조합인 것 같다. 메인은 맛있었지만 앞의 코스만큼 '우와'하는 강한 인상은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Sweet Pumpkin ; Pumpkin & Tumeric Soup, Ginger Yogurt Sherbet, Persimmon, Red Bean Cream

/ 단호박 ; 단호박과 울금 스프, 생강요거트 셔벗, 땅콩호박, 단감, 단팥크림, 시트러스 오일

​디저트는 '단호박과 울금 스프, 생강요거트 셔벗, 땅콩호박, 단감, 단팥크림, 시트러스 오일'. 이름이 엄청 긴데, 생강요거트 셔벗 위에 시트러스 오일을 뿌렸고, 단팥크림 위에 얹은 땅콩호박과 단감이 접시에 서브되어 나온다. 먹기 직전 단호박과 울금 스프를 뿌려주는데 색깔이 아주 예뻐서 일단 눈이 즐거웠다. 은은한 생강맛이 감도는 요거트 셔벗은 꽤 묵직한 편인데, 시트러스 오일을 뿌리니 맛이 더 진해졌다. 울금과 단호박 스프 또한 개성이 강한 맛이었는데, 아이스크림과 부대끼지 않고 섬세하게 어울리는 조합이었다는게 신기했다. 도미회나 두부냉채와 함께 인상적인 코스였다.

코스의 마지막으로 차(커피, 루이보스, 하동녹차)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쁘티푸가 나온다. 깨강정 헤이즐넛 마카롱, 유자카라멜. 마카롱은 별 임팩트랄 것까진 없고, 많이 달지 않고 기본에 충실한 깨강정과 유자향이 은은한 카라멜은 좋았다. 차의 종류가 조금 아쉽다는 생각은 들었다. 전통주 페어링이 잘 되는 것 같았는데, 차 종류도 조금 보강했으면 좋겠다.

권숙수는 작년 말 미슐랭가이드 서울편에서 별 두개를 받았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식당들이 미슐랭가이드 서울편에서 선전하지 못해 조금 아쉽고, 크게 신뢰하지 않던 차에 권숙수는 미슐랭가이드 서울편을 다시 보게끔 만든 식당이었다. 모던 한식 혹은 퓨전 한식당에서 시도하는 무리수가 보이지 않고, 음식 맛 자체는 '진짜 한식'에 가까웠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젓갈, 짱아찌 등 전통적인 발효음식을 다양한 제철 식재료와 좋은 조합으로 풀어냈다는 점이었다. 양식 레스토랑에 가까운 플레이팅을 보고 한입 맛보았다가 의외로 익숙한 맛이 느껴져 살짝 놀라게 되는 재미도 있었다. 런치 메뉴가 저렴하다곤 할 수 없지만 가성비가 훌륭해서 저녁에도 와보고 싶어졌다. 재방문 의사 100%


Posted by Alix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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