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출신들에겐 대단히 미안한 얘기지만, 거제는 솔직히 볼게 없는 '도시'다. 바다를 끼고 있지만 회를 먹을게 아니라면 딱히 거한 먹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무한리필 게장집과 멍게 비빔밥이 유명하다곤 하는데, 내 취향은 아니었다(게장집은 무한리필에서 이미 느껴지는 불길함이 딱 들어맞는 곳이었고, 멍게비빔밥은 멍게맛보다는 김과 참기름 맛으로 먹는 음식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으리으리한 조선소 두곳을 찾아 일부러 '산업관광'을 할 요량이 아니라면, 거제를 찾을 이유는 그닥 없다. 이번에 거제에 간 것은 순전히 거제에 새로 개장한 리조트에 묵기 위해서였다. 서부 경남 지역에서 그나마 황금연휴에 숙소를 유일하게 구할 수 있는 곳은 이곳뿐이었다.
▲장승포 근처 '바람의 언덕'에서 찍은 남해바다.
그러나, 조선소, ㅇㅇ중공업처럼 거제를 대표하는 어휘가 주는 거칠고 무겁고 답답한 느낌을 상상하고 막상 와보면, 거제는 '생각보단' 나쁘지 않은 곳이다. 앞에서 예로 든 무지막지한 것들이 자리잡고 있어도, 한쪽 바다는 시치미를 떼고 푸른 색으로 빛난다. 바닷속 밑바닥 바위색까지 꿰뚫을 만큼 영롱한 색이다. 물가에 가서 잠시 들여다보면 바닷속에서 헤엄치는 고기들이 보인다.
▲학동 흑진주몽돌해변
또 하나, 거제를 이번에 또 들른 이유는 이곳, 몽돌해변 때문이었다. 거제 곳곳엔 몽돌해변이 몇 군데 있다. 그중에서도 '학동 흑진주 몽돌'이라고 불리는 이곳의 돌은 진짜 흑진주를 닮았다. 파도에 젖은 돌멩이는 새까맣고 반들반들하게 빛난다. 몽돌해변을 제대로 즐기려면 물놀이 철을 피해 다녀가야 한다. 해변에 들어갈 때부터 발 밑에선 돌이 부딪치는 기분 좋은 소리가 난다. 자리를 잡고 해변에 앉아 귀를 기울이다 보면 파도가 한번 들이쳤다 나간 직후, 몽돌끼리 부대끼며 뽀드득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마른 돌끼리 마찰하는 소리랑 비교했을 때 훨씬 영롱한 음색이다.
안타깝게도 까만 몽돌의 영롱한 광채나, 몽돌끼리 부딪쳐 만들어내는 예쁜 소리는 이곳 해변에서만 감상할 수 있다. 몽돌을 밖으로 가지고 나가는 것을 단속하는 건 둘째 치더라도 돌을 손에 쥔 지 얼마 안 돼, 물기가 말라버리고 나면 눈을 혹하게 만들었던 광채는 금방 사라져 버린다. 바닷물을 머금지 않은 돌은 아무리 부대껴대도, 저들끼리 파도에 몸을 부딪쳐 만들어내던 그 소리를 똑같이 만들어내지 못한다. 결국 아쉬운 사람이 매년 찾아올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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