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eidoscope/음식

[FOOD NOTE] AtoZ cafe/Cafe/신촌

AlixJ 2016. 6. 26.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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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투지 카페의 리코타치즈샐러드


교환 갔다와서 남은 학기 보내는 동안 매우 자주 갔던 곳. 원래 앉던 테이블에 앉아 맨날 시키던 메뉴를 시켰다. 메뉴판이 좀 바뀌었는데 다행히 내가 찾던 리코타치즈샐러드와 고르곤졸라 파니니는 남아있었다.

리코타치즈샐러드라는 음식은 이곳에서 처음 먹어봤기 때문에 여기가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신선한 야채에 가게에서 직접 만든 리코타 치즈를 푸짐하게 올렸다. 꾸덕꾸덕한 리코타 치즈에선 상큼한 맛이 난다. 치즈 ​위에 말린 크랜베리와 슬라이스 아몬드를 얹어 나오는데 먹기 직전 함께 나온 발사믹 드레싱을 뿌린다. 재료맛이 건강하게 씹히는 샐러드 자체도 좋지만, 함께 나온 토스트빵에 치즈를 발라 먹어도 맛있다.

오랜만에 와도 이곳은 똑같다. 늘 시키던 음식이 같은 접시에 같은 맛으로 담겨 나왔고, 아늑하고 빈티지하지만 통일성은 없는 다락방 같은 인테리어도 여전했다. 심지어 옆테이블에 앉은 사람들 분위기도 비슷해 보였다(내가 여기 처음 왔을 때처럼 좀 나이든 대학생). 좋아하던 장소가 이토록 바뀌지 않은 것은 고맙고 놀라운 일이다.

그 근처 '라셀틱'의 이야기를 듣고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교환학생 시절을 보낸 동네엔 프랑스인이 운영하는 크레이프집이 있었는데, 거의 매일 거기서 점심을 먹곤했다. 신촌에 돌아와보니 못보던 크레이프 가게가 생겨있었다. 처음 라셀틱에 간 날, 한국말을 못하는 프랑스인 주인은 가게문이 열리는 종소리를 듣자 달려나와 웃으며 "Bonjour"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날부터 단골이 됐다. 친구랑 갈 때가 많았지만 심지어 혼자 간 적도 몇번 있다. 단골이 되어 불어로 안부를 나누기 시작하니깐, 주인 아저씨는 반가워하며 고향 브르타뉴 자랑을 늘어놓기도 했다. 다만 가게가 텅텅 빌 때가 많아 망할까봐 걱정이 되곤했다. 다행히 입소문도 나고 방송도 타서 라셀틱은 5년 넘게 버텨주었다. 얼마 후에 에이투지가 근처에 생겼고, 명물거리 근처에서 끼니를 해결할때 에이투지와 라셀틱을 두고 고민할 때가 많았다.

오늘 원래 라셀틱에 갈 생각이었다. 전화를 걸어봤는데 신호가 가는데도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가게 창문이 열려있는걸 보고 2층 매장으로 올라갔는데, 한창 공사 중이었다. 눈에 익은 하늘색 나무 문이 뜯겨나가고, 샤를씨가 정성들여 꾸민 가게 인테리어가 사라져 텅 빈 내부를 보고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역시나, 라셀틱은 지난주에 문을 닫았다. 아끼던 장소가 또 사라졌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이곳을 소개하는건 이제 불가능해졌다. 당시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에피소드들만 희미하게 추억으로 남았을뿐이다.

얼마전 문득 생각나서 찾아보니깐 교환학생 시절 드나들던 크레이프집엔 그때 그 할배가 여전히 크레이프를 굽고 있었다. 할배 나이가 워낙 많아서 그런가 함께 크레이프를 만드는 수제자(?)도 생긴 모양이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지만 이곳에선 좋아하던 장소들이 채 십년을 못 버티고 사라지는 일이 너무 많다. 라셀틱의 최후를 갑자기 확인하고 나니 내가 좋아하던 신촌 한구석이 반쪽이 된 느낌이다. 남은 절반은 잘 버텨주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