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NOTE] AtoZ cafe/Cafe/신촌
▲에이투지 카페의 리코타치즈샐러드
교환 갔다와서 남은 학기 보내는 동안 매우 자주 갔던 곳. 원래 앉던 테이블에 앉아 맨날 시키던 메뉴를 시켰다. 메뉴판이 좀 바뀌었는데 다행히 내가 찾던 리코타치즈샐러드와 고르곤졸라 파니니는 남아있었다.
리코타치즈샐러드라는 음식은 이곳에서 처음 먹어봤기 때문에 여기가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신선한 야채에 가게에서 직접 만든 리코타 치즈를 푸짐하게 올렸다. 꾸덕꾸덕한 리코타 치즈에선 상큼한 맛이 난다. 치즈 위에 말린 크랜베리와 슬라이스 아몬드를 얹어 나오는데 먹기 직전 함께 나온 발사믹 드레싱을 뿌린다. 재료맛이 건강하게 씹히는 샐러드 자체도 좋지만, 함께 나온 토스트빵에 치즈를 발라 먹어도 맛있다.
오랜만에 와도 이곳은 똑같다. 늘 시키던 음식이 같은 접시에 같은 맛으로 담겨 나왔고, 아늑하고 빈티지하지만 통일성은 없는 다락방 같은 인테리어도 여전했다. 심지어 옆테이블에 앉은 사람들 분위기도 비슷해 보였다(내가 여기 처음 왔을 때처럼 좀 나이든 대학생). 좋아하던 장소가 이토록 바뀌지 않은 것은 고맙고 놀라운 일이다.
그 근처 '라셀틱'의 이야기를 듣고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교환학생 시절을 보낸 동네엔 프랑스인이 운영하는 크레이프집이 있었는데, 거의 매일 거기서 점심을 먹곤했다. 신촌에 돌아와보니 못보던 크레이프 가게가 생겨있었다. 처음 라셀틱에 간 날, 한국말을 못하는 프랑스인 주인은 가게문이 열리는 종소리를 듣자 달려나와 웃으며 "Bonjour"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날부터 단골이 됐다. 친구랑 갈 때가 많았지만 심지어 혼자 간 적도 몇번 있다. 단골이 되어 불어로 안부를 나누기 시작하니깐, 주인 아저씨는 반가워하며 고향 브르타뉴 자랑을 늘어놓기도 했다. 다만 가게가 텅텅 빌 때가 많아 망할까봐 걱정이 되곤했다. 다행히 입소문도 나고 방송도 타서 라셀틱은 5년 넘게 버텨주었다. 얼마 후에 에이투지가 근처에 생겼고, 명물거리 근처에서 끼니를 해결할때 에이투지와 라셀틱을 두고 고민할 때가 많았다.
오늘 원래 라셀틱에 갈 생각이었다. 전화를 걸어봤는데 신호가 가는데도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가게 창문이 열려있는걸 보고 2층 매장으로 올라갔는데, 한창 공사 중이었다. 눈에 익은 하늘색 나무 문이 뜯겨나가고, 샤를씨가 정성들여 꾸민 가게 인테리어가 사라져 텅 빈 내부를 보고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역시나, 라셀틱은 지난주에 문을 닫았다. 아끼던 장소가 또 사라졌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이곳을 소개하는건 이제 불가능해졌다. 당시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에피소드들만 희미하게 추억으로 남았을뿐이다.
얼마전 문득 생각나서 찾아보니깐 교환학생 시절 드나들던 크레이프집엔 그때 그 할배가 여전히 크레이프를 굽고 있었다. 할배 나이가 워낙 많아서 그런가 함께 크레이프를 만드는 수제자(?)도 생긴 모양이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지만 이곳에선 좋아하던 장소들이 채 십년을 못 버티고 사라지는 일이 너무 많다. 라셀틱의 최후를 갑자기 확인하고 나니 내가 좋아하던 신촌 한구석이 반쪽이 된 느낌이다. 남은 절반은 잘 버텨주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