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winter/雪國//Day 4-Echigo Yuzawa
시마무라는 고마코에게 끌려 설국의 온천장을 해마다 찾았다. 유자와마치(湯沢町)에서 '설국'이 잉태된지 80년이 지났지만, 마을은 시마무라와 고마코의 흔적에 끌려 설국을 찾은 사람들로 붐빈다. 고마코가 도쿄로 돌아가는 시마무라를 배웅하던 기차역엔 색색의 스키웨어를 입은 젊은이들이 이른 아침부터 짐을 챙기고 있었다.
그들 틈바구니에 끼어 역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마을 근처에 있는 가라유자와스키장(ガーラ湯沢スキー場)으로 향했다. 유자와마치엔 나에바스키장(苗場スキー場), 유자와코겐스키장(湯沢高原スキー場) 등 크고 작은 스키장들이 모여있다. 산 위로 올라가 다른 스키장으로 건너 내려갈 수도 있고, 역과 몇개 스키장을 연결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스키장 셔틀버스를 기다리면서.
가라유자와스키장은 겨울에만 임시로 문을 여는 가라유자와역과 바로 연결돼 있다. 리프트권을 구입하기 위해 매표소로 향했다. JR이스트패스나 JR간토에어리어패스 이용자는 여기서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매표소에서 영어를 구사하는 직원이 JR패스를 갖고 있냐고 물어보는데, 그렇다고 하면 알아서 리프트 전일권+로커이용권+스키/스노우보드 렌탈 10% 할인권을 묶은 3100원짜리 상품을 안내해준다. 리프트 전일권 정상가격이 4600엔이고 반일권은 3500엔이란 점을 감안하면 훨씬 싸다(따로 사면 로커도 유료다). 10% 할인 받은 스키 장비까지 반일로 빌렸더니 3330엔이 나왔다. 스키장에 입장하는데 든 총비용은 6430엔, 한화로 5만9000원 정도다.
스키 장비를 빌리기 위해 렌탈숍으로 갔다. 렌탈 신청서를 먼저 작성하고 데스크에 내는 절차는 한국과 똑같다. 외국인이 많이 찾는 곳이라 시즌 중엔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외국인 직원이 여러명 상주하면서 업무를 본다. 일어를 못해도 스키장까지 들어가는덴 별 불편함이 없다.
▲중간 휴게소인 '치어스(Cheers)'로 올라가는 곤돌라.
곤돌라를 타고 스키장 슬로프가 시작되는 휴게소 치어스(Cheers)로 올라간다. 치어스를 기점으로 이곳에서 또 리프트를 타고 10여개 중 코스 중 하나를 선택해 스키를 즐기면 된다. 적당한 난이도로 라이딩을 즐기기 위해 초급자 코스인 '에델바이스'와 중급자 코스인 '소셔블'을 골랐다. 비교적 완만한 코스에서 직선과 S자형 활강을 번갈아가며 설원을 달릴 수 있다. 매표소에서 나눠주는 코스맵엔 코스 길이와 폭, 경사도까지 자세히 나와있어서 스키 실력에 맞는 코스를 선택할 때 편리하다. 넓은 코스에서 유유히 활강을 즐길 수도 있고 낭떠러지를 끼고 난 좁은 산길을 따라 내려올 수도 있다.
▲, ▲▲치어스에서 리프트를 타고 올라간 '소셔블' 코스 정상에서. 활강 직전.
'소셔블'과 '에델바이스' 코스를 이용하려면 4인용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는데, 코스가 워낙 여러개라 리프트 대기 시간이 거의 없다. 설질(雪質)은 파우더처럼 부드럽고 폭신하다. 깃털처럼 가벼운 건설(乾雪)이라 활강하는 스키어의 뒤로 스키 날에 부딪친 눈이 고운 가루가 돼 산산이 부서진다. 눈이 잘 뭉치지 않기 때문에 아이스 구간이 없고, 눈밭에 넘어져도 아프지 않다. 정상으로 올라가니 산마루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다소 서늘했지만, 전체적인 추위는 서울보다 훨씬 덜했다.
▲▲중급자 코스인 소셔블 슬로프 중간. 슬로프가 길기 때문에 스키어나 스노우보더들은 가장자리 평지에서 쉬어가기도 한다.
▲산길을 따라 나있는 초급자용 '에델바이스' 코스. 폭 3m 정도되는 코스인데, 낭떠러지를 끼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내려가는 재미가 있다.
4시간 정도 오전 라이딩을 마친 뒤 셔틀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간다. 땀과 눈에 젖은 스키복을 갈아입고 젖은 머리를 말린 뒤 출출해진 배를 채우기 위해 식당들이 모인 역 앞 번화가를 돌아본다. 따뜻한 국물이 땡기던 참이라 '나카노야'와 함께 유자와에서 직접 뽑은 국수로 유명한 '신바시(しんばし)'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따뜻한 우동과 차가운 소바, 막 튀겨낸 덴푸라를 주문했다. 따뜻한 국물과 덴푸라의 기름기가 들어가니 오전 내내 운동으로 지친 몸에 기운이 좀 돈다. 짭짤한 쯔유에 찍어먹는 깔끔한 자루소바와 메밀면수로 입을 가시고 식당을 나왔다.
점심식사를 하고 문득 이곳에 와서 식후에 버릇처럼 먹던 커피를 한번도 제때 마시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모처럼의 운동으로 더욱 지친 몸에 카페인과 당(糖)이 필요하다면 에치고유자와역 서쪽 출구 바로 맞은 편에 있는 '하타고 이센(HATAGO 井仙)'을 추천할 만하다. 원래 하타고 이센은 이번 여행에서 고려했던 숙소 목록 중 하나이기도 했다. 요리가 특히 강점인 료칸으로 알려져 있다. 료칸 1층의 카페도 호젓하게 휴식을 즐기기 좋은 공간이다.
▲'하타고 이센' 1층에 있는 카페 내부. 일본 전통 목조건축의 뼈대를 살렸지만, 현대적인 소품과 커피내리는 기구를 사용한 인테리어가 이색적이었다.
▲▲카페에서 파는 롤케이크와 '사사당고(笹団子·ささだんご)'. 쌀이 유명한 니이가타답게 쌀로 만든 롤케이크는 입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아내린다. 팥소가 들어간 떡을 댓잎에 싸서 찐 사사당고는 니이가타현의 명물 과자다.
▲낮시간이라 한적한 료칸에서 온천에 가는 길. 온천장에선 유카타를 입고 식사도 하러가고 목욕도 하러간다.
아직 해가 떨어지기 전 숙소에 들어와 온천욕을 할 준비를 마쳤다. 유카타를 입고 온천으로 가는데 료칸 내부는 한산했다. 역시나 탕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는 탕에서 격한 운동으로 지친 팔다리를 달랬다. 하루종일 추위와 격한 운동으로 얼었다 녹길 반복하느라 딱딱하게 굳은 근육이 스르르 풀리는게 느껴졌다. 탕에서 나올 땐 들어가기 전보다 훨씬 온몸이 가벼워졌다. 저녁식사는 동해에서 잡은 해산물이 메인이 된 가이세키였다. 전날 코스보다 싱싱함이 느껴지는 요리들이 나아진 느낌이었다.
▲'쇼센가쿠 카게츠'의 가이세키 요리
방으로 돌아와 눈 덮인 유자와마치가 내려다보이는 창가에 앉았다. '설국' 책을 펼치니, 게다를 신고 꽁꽁 언 눈(雪) 위를 달리는 고마코의 모습이 창밖에 그려졌다. 청명하여 슬프도록 아름다운 요코의 목소리도 상상해봤다. 설국의 하루도 저물었다. 별이 하나둘 반짝이기 시작했다. 시마무라처럼 발에 힘을 주며 하늘을 올려다본 순간, 쏴아 하고 은하수가 안으로 흘러드는 듯했다. 이 눈의 고장이 유독 아름다운 건 일상의 공간을 잠시 접어둔 채 떠나온 비현실적 공간이란 전제 때문이기도 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되새기는 눈의 고장은 실제 그곳에 있을 때보다 더 아름다운 것 같다.
-에치고유자와의 호텔과 스키장들을 연결하는 무료 셔틀버스 시간표.
http://www.minoriya.gr.jp/images/717079_1.pdf
http://www.minoriya.gr.jp/images/717078_02.pdf
-스키장 매표소에서 코스맵을 무료로 나눠준다. 워낙 코스가 많고 복잡해 안전한 스키를 위해선 챙겨두는 게 좋다.
-에치고유자와역 1층엔 다양한 지역 특산물을 파는 꽤 큰 규모의 쇼핑몰이 있다. 쌀로 만든 과자의 가성비가 좋은 편이다. 니이가타 쌀로 만든 사케를 시음해 볼 수 있는 폰슈칸도 이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