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녀
수습기자 시절 대개 가장 힘든 날은 목요일이었다. 일주일에 한번 퇴근하는 금요일 밤이 머지 않았지만, 목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시간은 참 느리게 흘렀다. 목요일엔 아이템 회의와 회식이 있었다. 아이템 제출하라고 쪼아대는 일진 선배의 갈굼도 목요일 오후에 정점을 찍었다. 그렇게 나른하면서 머리가 지끈거리던 목요일 낮에 사건이 터졌다.
평소엔 잘 들어가지도 않던 서초경찰서 교조계에 수습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경찰이 기자들에게 공개한 현장 사진을 한두장씩 넘겼다. 고속버스 앞부분이 조금 부서졌고, 중앙분리대에 부딪혀 돌아간 검은색 SUV차량도 뒷좌석과 보닛이 심하게 파손돼 있었다. 여기저기가 망가진 차들이 고속도로에 이리저리 엉켜있었다. 2명이 현장에서 즉사한 12중 추돌사고라고 했다. 사진을 하나하나 보면서 부서진 차를 셌다. 하나, 둘, 셋… 사진에 찍힌 사고 차량은 총 11대였다.
“팀장님, 12중 추돌 맞아요? 여기 사진에 11대밖에 안 찍혔는데요”
“12대 맞아"
“사망자 타고 있던 차가 어떤 거예요?”
“하얀 아반떼”
“아반떼요? 여기 아반떼가 어딨어요?”
수습들의 귀찮은 질문에 그는 사진 하나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차’가 있어야 할 곳엔 타다 남은 납작한 고철 덩어리가 누워있었다. 앞좌석과 뒷좌석의 흔적조차 없었다.
해외여행을 앞두고 들뜬 사람들을 태우고 천안에서 출발한 리무진 버스는 인천공항으로 가기 위해 그날 점심 때 즈음 경부고속도로 양재 나들목 부근을 지나고 있었다. 앞서가는 차들이 서행하기 시작했지만 버스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버스 앞에는 흰색 아반떼가 있었다. 그 순간 버스기사는 깜빡 졸았다고 했다. 버스는 갑자기 앞서가던 아반떼를 들이받았다.
‘들이받았다’는 기사를 쓰기 위해 지극히 순화한 표현이었다. 버스 차체는 아반떼를 삼켜버렸다. 버스 밑에 깔린 승용차가 옆으로 튀어나가면서 지나가던 차들은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급박한 상황이 멈춘건 이미 차량 12대가 이리저리 엉켜버린 후였다. 버스가 완전히 뭉개고 지나간 아반떼에선 불길이 치솟았다. 고속버스가 삼켜버린 아반떼는 완전히 짓눌려 버렸다. 구조대원들이 차체에서 탑승자를 꺼내는 사진이 찍혀있었다. 납작해진 고철 덩어리의 높이는 성인 남성의 무릎에 채 닿지 않았다.
흰색 고철 덩어리 주위 검은 아스팔트 바닥엔 붉은 잔해가 산산이 흩어져 있었다. 그 새빨간 색깔의 무엇의 정체가 궁금했던 건 잠시. 검은 바닥과 하얀 차체와 너무도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그 물체가 ‘붉은색’이라는걸 인식한 순간 현기증과 욕지기가 일었다. 붉은 잔해는 원래 있어야할 사고차량 뒷좌석 바깥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나는 그 붉은 잔해가 제발 내가 상상하던 것이 아니길 바라며 천천히 사진을 확대했다.
붉은 그것의 정체는 김치였다. 고춧가루에 버무린 배추김치가 온 고속도로에 흩뿌려져 있었던 것이었다.
사고가 난 시기는 11월 중순, 김장철이었다.
79세 어머니와 53세 딸은 사이좋게 김장을 끝마쳤다. 빨갛게 버무린 김치 속을 서로에게 집어주면서 “좀 맵다” “좀 짜다” 같은 살가운 타박을 했을 것이다. 쌓아놓은 노란 배추 사이사이에 속을 채우며 그간 밀린 얘기가 도란도란 오간다.
팔다리가 아프고 허리가 쑤시지만, 정성들인 김장김치를 나눠먹을 식구들을 생각하며 “아이구 허리야”하면서도 싫은 기색은 아니었을테다. 그렇게 고생고생 완성한 김장김치를 네모난 통에 가득가득 포개 담으며 겨우내 먹을 김치를 든든히 쟁여놨다는 생각에 뿌듯했을 것이다. 나이든 어머니가 아직 김장을 챙길 기력이 있다는 사실에 딸은 감사했을 것이다.
그날 아침, 뒷좌석과 트렁크에 김치통을 가득 싣고 딸이 운전대를 잡았고 어머니는 조수석에 탔다. 고속도로에 접어든지 얼마 안돼 차들이 서행하기 시작하자, 모녀는 막 이야기를 꽃피우던 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달려온 버스가 모녀의 다정한 순간을 삼켜버리기 직전까지는.
그날 오후 내내 몸도 머리도 무거웠다. 고속도로에서 허무하게 세상을 떠난 모녀에겐 아마 내 또래의 자식, 손주가 있었을 것이다. 직전 주말에 외갓집에 모여 김장을 한 외할머니와 엄마가 생각났다. 외갓집에서 엄마가 가져온 김장김치와 검은 아스팔트에 흩뿌려진 빨간 잔해가 오버랩돼 머릿속에 맴돌았다.
경찰서에서 나오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험한 일을 하는 딸을 걱정하던 엄마는 늘 그랬듯, 신호가 두번 울리기 전에 전화를 받았다.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들킬까봐 작은 한숨을 삼켰다.
한동안은 작은 계기만 있어도 그날의 사고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김장김치, 흰색 아반떼, 경부고속도로, 공항버스. 사고를 떠올릴 기억의 고리들은 다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고리들도 점점 희미해졌고, 섬광처럼 떠오르던 장면도 공들여 생각하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는 기억이 됐다.
그러다 며칠 전 본 블랙박스 영상은 저편에서 희미해진 기억을 다시 끄집어냈다. 4년 가까이 흘렀지만 마치 같은 사고처럼 비슷한 장면이었다. 주말 오후 영동고속도로 위, 봉평터널 입구에서 서행하던 승용차를 뒤에서 오던 대형버스가 갑자기 삼켜버렸다. 이번에 승용차에 타고 있던 이들은 속초에서 피서를 즐기고 돌아오던 20대 젊은이 5명이었다. 스무살, 스물한살짜리 여자애 넷이 현장에서 허무하게 세상을 떴다. 이날도 버스기사는 졸고 있었다.
예전의 그 장면을 되살릴 또 하나의 고리가 생겼다. 비슷한 사고 소식을 들으면 아마도 또 기억은 살아날 것이다. 늘 남아있었으면 하는 기억이 있는 반면, 머릿속에서 희미해지길 내심 바랄 수밖에 없는 기억도 있다. 완전히 잊을 수는 없어도, 조금 덜 선명해졌으면 좋겠다. 그날 기억이 머릿속에서 빠져나와, 굳이 찾아봐야 떠올려낼 이 글의 활자로만 남길 바란다. 새로운 고리가 될 일들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