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Raphaël
Raphaël(2003, Carla Bruni 1집 Quelqu'un m'a dit 수록곡)
(찬바람이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하니 가을맞이 월드뮤직으로 음악노트를 써봐야겠다. 첫 순서는 샹송)
카를라 브루니가 프랑스의 퍼스트레이디가 되기 4년 전인 2003년 내놓은 'Quelqu'un m'a dit(누군가 나에게 말했다)'에 수록된 곡이다.
솔직히 브루니는 빈말로도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는 아니다. 하지만 브루니 앨범에 실린 몇몇 곡은(특히 1집) 읊조리는 듯한 불어의 나른함 때문에 자꾸 듣게 된다. 브루니가 이탈리아인이란게 반전이지만, 뛰어나지 않은 노래 실력으로 프랑스어 노래를 아주 섹시하게 부르는 것은 분명하다(단, 브루니가 부르는 영어 노래는 영 별로다).
이 노래 'Raphaël' 레코딩 버전 초입엔 플랫슈즈를 신고 돌바닥을 다섯 발자국 걸어가는 소리가 난다. 아마 '라파엘'의 방문을 열기 직전 들리는 소리이리라.
'Raphaël'은 가사의 의미에 귀기울여 듣지 않을 때 더욱 아름답다(적어도 내 기준엔 그렇다). 아이러니하게도 브루니가 속삭이는 밀어는 달콤하기 그지 없지만, 그 내용을 파보면 아연실색하게 되는 치정극이라 그렇다.
Quatre consonnes et trois voyelles, c'est le prénom de Raphaël
Je le murmure à mon oreille et chaque lettre m'émerveille
C'est le tréma qui m'encorcelle dans le prénom de Raphaël
Comme il se mêle au "a" au "e", comme il les entremêle au 'l"
네가의 자음과 세개의 모음, 라파엘의 이름이지
그 이름을 내 귀로 속삭이는데, 철자 하나하나가 나를 감탄시키네
라파엘의 이름 속 트레마(e 위에 있는 점 두개)가
a에서 e로 녹아들면서, l에 섞여들면서 나를 사로 잡곤하지
가장 덜 야한(!) 1절 가사만 적어보자면, 이러한데 뒤에 나오는 가사는 대충 노래의 주인공 '라파엘'과 밤을 보낸 전후의 묘사와 라파엘에 대한 열렬한 찬사로 이뤄져 있다. 문제는 이 라파엘이 누구냐는 건데. 브루니가 인정한 것은 아니라곤 하지만, 이 노래 주인공은 프랑스 철학자 라파엘 앙토방으로 알려져있다.
(※여기서부터 복잡 주의)
브루니는 라파엘의 아버지이자 작가인 장 폴 앙토방과 연인이었는데, 어쩌다가 애인의 아들인 라파엘에게 환승을 했다. 브루니는 노래의 주인공 라파엘과 동거하며 아들 오렐리앙을 낳았다. 라파엘은 브루니와 만날 때 결혼한 상태였다. 라파엘의 전처였던 소설가 쥐스틴 레비(그 '레비'가 맞다.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을 쓴 베르나르 앙리 레비의 딸)는 브루니에게 남편을 빼앗기고 약에 쩔어 망가진 얘기를 자전적 소설로 써냈다.
실화라서 더 공포인 막장드라마 '심각하지 않아(Rien de grave)'를 읽고나면 '라파엘' 노래를 달콤하게만 들을 수 없게 된다. 첫 인상은 달콤하지만 뒷맛은 씁쓸하기 그지없는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