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eidoscope/공연

서울시향 2018 실내악 시리즈I 이안 보스트리지

AlixJ 2018. 3. 7. 09:05

<공연 전날 R석 티켓 한장 취소해 준 분께 감사드리며>

6일 오후 8시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의 공연에 다녀왔다. 10-11일 공연은 알았는데 이 공연의 존재는 너무 늦게 알았고, 존재를 알았을 땐 이미 IBK체임버홀 좌석은 모조리 매진된 후라 마침 개강도 했고 하니 곱게 마음을 접으려고 했었다.
공연 전날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오밤중에 예당 홈피에 들어갔더니 R석 가운데 블록 13열에 괜찮은 좌석이 딱 한장 비어있었다. 바로 겟.

사실 이안 보스트리지를 한창 좋아하던 것은 한참 전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초반까지 독일 가곡을 아주 열심히 들을 때가 있었는데, 이안 보스트리지가 부른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가 명반이라는 추천을 받고 앨범을 무려 아마존에서 사서 들어본 뒤부터 좋아하게 되었다. ‘물방앗간’이나 ‘시인의 사랑’ 같은 서정적인 레퍼토리가 대표적으로 좋지만, Der Zwerg나 마왕 같은 무시무시한 곡도 소름끼치게 소화해서 후자 쪽을 더 좋아한다. 리트를 부르는 테너 중에선 분덜리히 다음으로 많이 들은 듯.



어쨌든 그렇게 갑자기 공연에 가게 되어 별 준비 없이 공연장에 갔다. 레퍼토리는 슈베르트 연가곡 ‘Schwanengesang(백조의 노래) 중 세곡, 베토벤의 연가곡 An die Ferne Geliebte(멀리있는 연인에게), 슈베르트 가곡 Auf dem Strom, 말러의 Lieder eines fahrenden Gesellen(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본 윌리엄스의 On Wenlock Edge(웬로크 벼랑에서). Auf dem Strom은 피아노-호른 편성으로, 말러는 하프와 관악이 들어간 실내악 편성으로, 본 윌리엄스는 현악과 피아노 반주로 불렀다.

사실 처음 슈베르트 세 곡은 무난했지만 컨디션이 안 좋아보여서 기대보다는 살짝 실망이었다. 그러나 곧 시작된 베토벤의 An die ferne Geliebte는 정말 좋았다. 뒤로 갈수록 가수 컨디션이 점점 좋아져서 그런가 특히 5,6번째 곡은 애달프면서 담담한 곡을 표현하는데, 순간 가슴이 찌릿 아플 정도로 좋았다.

방황하는젊은이의노래는 실내악 버전의 반주가 낯설어서 처음엔 뭥미 싶었는데 듣다보니 꽤 좋았다. 웬로크는 이날 쌩처음 듣는 곡이었는데도 울컥하게 만드는게 있었다. 게다가 가사가 영어라 상대적으로 독어권 성악가에 비해 약점인 보스트리지의 리트 딕션이 완전이 극복된 곡이었다. 그의 모국어로 부르는 노래는 확실히 더 울림이 있었다. 곡이 끝나고 한참동안 먹먹해서 홀린듯 앉아있었다. 앨범도 주문했으니 다시 들어봐야지.

전체적으로 보스트리지는 상실감과 애달픈 청년 시점을 표현하는덴 특화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황으로 듣다보니 울컥하는 순간이 몇번 있었다.

앵콜 때 슈베르트의 ‘백조의 노래’ 중 Standchen(세레나데)를 불러줬다. 흔한 앵콜이지만 좋았다. 내심 앵콜로 보스트리지가 무시무시하게 부르는 der zwerg나 마왕 기대했는데 앵콜로 하기엔 빡신 곡이긴 하다(특히 반주). 하이라이트 komm beglücke mich에서 어디선가 카톡 소리 울린 건 조금 깼다ㅠ

끝나고 주차장 쪽에서 어슬렁거리다 보스트리지와 마주쳤다. 가까이서 보니 아주 깐깐한 교수님 풍의 쿨내가 풀풀 풍겼는데 오랜 팬이었다고 싸인 부탁하니 냉기를 풀풀 날리며 쿨하게 해줬다. 약간 울적하면서도 묘하게 황홀하기도 한 밤이었다.